17. 뭐? 자전거 타고 속초에 껌 사러 간다고? 로드바이크로 용문역에서 속초까지 정말 성격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하고 싶은 건 해 봐야 직성이 풀리고, 그걸 못 하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를 않아서 스트레스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건 2019년 가을 무렵부터 생각하던 것이었는데 며칠 전 문득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고 그걸 빌미 삼아 생각을 정리할 요량으로 작정하게 됐다. 거기다 소설 <로드바이크> 출판이 코 앞인 상황에 편집장님은 내가 제일 못하는 걸 해서 보내라는...... 이상하게도 새로운 소설을 출판할 때마다 써야 하는 그놈의 <작가의 말>은 그렇게 쓰기 힘들다. 이번 여행 후에 써서 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 후기를 쓰는 지금도 아직 쓰지 못했다. 소설 <로드바이크>는 자전거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소설로 3월 중 출판된다. 혹시라도 같이 갈 사람이 있을까 싶어 가깝게 지내는 라이더 몇 명에게 제의했지만 역시 함께 갈 사람은 없었다. 대체로 이런 장거리는 혼자 다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 혼자 간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최근에 펑크가 잦아 이번 라이딩 때 자가 수리를 할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했다. 그래서 핸드펌프와 예비 튜브 그리고 펑크패치 등을 미리 준비했다. 추가로 포도당 캔디를 왕창 구입했다. 지난번 봉크 사태를 경험한 탓이다. 게다가 바로 전 주에는 춘천까지 왕복하던 중 대성리 근처에서 체인이 끊어지는 바람에 나머지 구간을 경춘선 열차를 타고 점프하는 상황에 초래했기 때문에 장비 트러블 문제가 은근히 신경 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체인링크를 세 개나 구입해서 여분으로 하나 더 챙겨 가기로 했다. 등산할 때 쓰던 멀티툴도 가져가려고 무게를 재보니 너무 무거워 자전거 전용툴만 가져가기로 했다. 불필요한 툴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3월 7일 토요일 5시. 체중을 줄이기 위해 화장실에서 갖은 힘을 다 썼지만 평소보다 시원하지 않았다. 밤새 속초까지 자전거를 타는 것을 두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꿈에 어찌나 코를 파대는지 피도 나고 더러워서 죽는 줄 알았으니까 말이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용문역으로 가는 길,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꽤 쌀쌀했다. 얇은 반팔 져지에 팔토시만 하고 바람막이 한 장만 걸치고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 해가 뜨면 차라리 더운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새로 구입한 공구통 안에 잡다한 것들을 모두 넣었다. 혹시나 싶어 호박엿도 몇 개 챙겼는데 전철에서 하나 까먹은 것을 빼곤 그대로 가져왔다. 해가 뜨기 전 어스름한 양수역 다리를 건너며 촬영한 영상이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산 너머로 해가 뜨기 시작했다. 정거장에 멈출 때마다 문으로 침입하는 한기도 잠시 후면 녹록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었다. 거의 첫차나 마찬가지라 그런지 용문역에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처음 와보는 용문역이 낯설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니 며칠 전 양평신내서울해장국에 밥 먹으러 갔다가 탐사차 둘러보았던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이없게도 반가움을 느끼고 있었다. 삼십여 분 정도 달리자 손발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봄이라 하기엔 아직 무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에나 입을 정도로 옷을 입고 나왔으니 그 정도 고통은 감수해야 할 판이었다. 공도를 달리다 촬영한 사진이라 포커스가 없지만 산 위로 떠오른 태양이 추위를 날려버릴 것이다. 한 시간 넘게 달렸을까? 손이 시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사진을 촬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긴 업힐 끝에 만난 홍천군 이정표를 만나자 페달을 멈추고 섰다. 이제 강원도에 진입한 것이다. 8시 39분이다. 7시 20분경에 출발했으니 약 한 시간 이십 분 정도 달린 것이다. 제법 빨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점프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한참을 달리자 홍천화로구이 식당들이 늘어선 곳에 도착했다. 너무 손이 시려서 달릴 수 없었기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클릿슈즈에 커버도 하지 않아 발 역시 꽁꽁 얼어붙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슈즈커버를 씌우고 왔을 것인데 이미 늦은 후회는 의미가 없다. 속초까지는 대부분 공도를 달리는 코스라서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다행히 주말이고 이른 시간대라 도로를 달리는 차는 많지 않았다. 손에 체온이 좀 돌기 시작하자 다시 페달을 밟았다. 9시 32분. 인제, 신남 이정표가 나타났다. 어찌나 반가운지 모른다. 벌써 인제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해는 이미 한창이지만 구름이 빛을 가린 채 놓아주지 않았다. 추위는 줄곧 이어졌고 손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통 속의 강행군이었다. 업힐과 다운힐이 계속 이어지는 공도를 달려야 했다. 혼자 달리다 보니 이런 표식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그냥 쉬지 않고 달린다. 하늘 내린 인제. 드디어 인제에 진입한 것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오겠네. 예전에 설악산을 다니며 엄청나게 다니던 길인데 자전거로 가니 너무나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동갈보대쉼터를 만나고서야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손이 너무 시려서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에 사진 한 장 남겼다. 벌써 점심때가 다 되었다. 인제 혹은 원통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달리지도 못하고 펑크가 났다. 업힐을 거의 다 올라가는데 피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휠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뒷바퀴였다. 설마 하며 걱정했던 상황이 벌어졌지만 전혀 걱정할 바가 없었다. 예비 튜브를 꺼내 교체하고 펌프로 바람을 주입하는 일련의 행위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도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차량들이 내는 소음이 매우 거슬렸다. 그들은 나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 인제로 향하는 길. 소양강을 만났다. 겨울이라 수량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 라이딩 중 멈춤 없이 촬영한 사진이라 전선도 함께 포착했다. 배가 고파서 빨리 인제까지 가야만 했다. 중간에 길 옆 휴게소들이 제법 있었고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힘겹게 페달질을 하는 나를 보기도 했다. 하필이면 맞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해서 속도가 더욱 줄기 시작했다. 솔로 라이딩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맞바람에 기나긴 업힐이 이어져 체력이 고갈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인제 시내가 나타났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인제로 가는 길에 경사도가 꽤 센 업힐 하나가 있었다. 지도에는 가넷고개길이라고 나와있던데 인제터널 옆으로 난 옛길이다. 군축령이라고도 한다. 그 길에서 처음으로 등산객으로 보이는 세 사람을 만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경사가 센 오르막길을 오르는 내가 불쌍해 보였을 것이다. 인제 시내를 지나 약한 업힐을 오르는데 거친 맞바람 때문에 나 자신과의 협상에 돌입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전방에 보이는 휴게소가 이미 나의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고민이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밥을 먹고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미 체력이 고갈되고 있었고 맞바람도 힘들고 춥기도 하고... 아무튼 온갖 비겁한 변명을 대며 나 자신을 합리화하며 원통까지 가겠다던 의지를 접어버렸다. 메뉴 선정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원 계획 같았으면 용대리에서 황태해장국을 먹는 것이고, 수정된 계획은 원통에서 황태해장국을 먹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인제에서 황태해장국을 먹게 됐다. 점심 식사를 아주 느리게 해결하고. 도로를 달리는데 GARMIN에 담아온 용문-속초 GPX 파일에서 경로 이탈 메세지를 보내왔다. MODE를 MAP으로 변경하고 보니 다른 길을 달리는 듯했다. 장비가 보내오는 경고성 메시지를 무시하고 한참을 달리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하천변을 내려다보았는데 자전거길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자전거길이 나타나자 반갑기 그지없었다. 인제에도 자전거길이 있구나 싶어 자전거를 들고 걸어서 내려왔다. 하지만 몇 백 미터 정도 달려서 방향이 잘못된 것을 인지했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 하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를 건넜다. 다리에는 리빙스턴교라고 쓰여 있었다.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2XXX2518604 카지노 백과사전에 리빙스턴교에 대한 설명이 있어 퍼왔다. 하천 옆을 따라 달리는 도로는 매우 한적했다. 새로 난 도로 때문에 동네 분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길을 달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차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사실 뒷길까지 손바닥처럼 아는 동네다. 피서철에 길이 막혀 차가 줄을 서도 나는 동네 사람들이나 다니는 샛길로 다니곤 했기 때문이다. 한때 인간네비게이션으로 불렸던 정도니...... 원통삼거리 근처에서 처음으로 라이더를 만났다. 부부였던 것 같은데 모처럼 만난 라이더와 잠시라도 인사를 나누니 좋았다. 그저 이유 없는 반가움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와는 반대로 동쪽에서 넘어오는 길이었다. 시간 상으로는 서울까지 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열심히만 달리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여긴 인북천이다. 이 길을 쭉 달리면 원통삼거리에서 남교리, 용대리 쪽으로 갈라진다. 익숙한 길을 달리는 기분이라 마음은 편했지만 맞바람은 만만하지 않았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개활지에서 맞는 바람의 세기는 라이딩을 힘겹게 했다. 멀리 설악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설악에서 잔 날만 대충 세어도 반년 이상은 될 텐데 어찌나 그리웠던지 모른다. 불과 몇 달 전에도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GPX는 자꾸만 경로 이탈 경고를 보내왔다. 내가 가는 길은 농로를 자전거 전용 도로로 만든 곳이다. GPX에는 다른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 멋진 풍광을 두고 엄한 길로 안내하다니 ^^ 물 맑은 북천을 감상하며 느리게 페달을 밟았다. 빨리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지만... 남교리, 용대리 방향으로 가는 중이다. 곧 황태덕장을 만날 수 있다.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자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사진 몇 장을 남겼다. 멀리 설악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야~호~ 이제 미시령까지 24km 정도 남았다. 공포의 미시령 업힐만 잘 넘으면 고생은 끝이다. 그나저나 맞바람이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