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글쓰기

일곱살 큰 아이의 글쓰기 대장정, 그 영광스런 동행

by멋쟁이 한제

일곱살 큰 아이의 일기가 스무 권이 되었다. 처음 한글을 얼추 뗄 무렵부터 시작된 그림 일기는 일년 넘게 꾸준히 써 오고 있는데 싫다 싫다 하면서도 하겠다고 앉으면 끝까지, 잘 써야 성에 차는 아이를 보면 대견하다.


그간의 기록들

처음에는 내가 먼저 한 페이지를 쓰고 엄마의 글씨를 읽게 하고 두번째 페이지에 아이의 일기를 함께 썼다. 웅얼웅얼 횡설수설 하는 말을 한 문장으로 구성하여 쓰는 연습으로 시작하여 맛있었다, 재미있었다, 를 제외한 다양한 어휘를 사용해보기, 접속사를 알맞게 사용하기 등으로 국어공부를 하는 셈이었다.

2021년 7월 7일 , 처음 쓴 우리의 일기



쓰다 보니 느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주제를 한정하여 쓰기로 했다. 가장 관심있어 했던 독생물 도감 쓰기. 바카라을 먼저 읽고 자기가 직접 바카라을 쓰는 것처럼 해 보자 하니 흥미있게 접근하였다. 기분 좋은 날은 그림도 잘 그리고 색칠까지 완벽하게 하고는 흐뭇해 하며 그렇게 한권을 다 마쳤다.


생물도감의 한 페이지, 아이가 쓴 정확한 제목은 생물독암이다. 조시매요. 이런 맞춤법 오류는 너무 귀여워서 고쳐주기가 싫었다.



아이는 정말 바카라 처럼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고 싶어했다. 그러며 부사나 호응 어휘를 시도했다. 나는 외국어를 전공한 엄마라서 문법의 오류, 호응 관계가 맞지 않는 것, 문장이 길어지며 틀어지는 주술관계를 참지 못한다. 그런데 이 여섯살 짜리의 일기에 어느정도 까지 손을 대야 하나가 가장 큰 딜레마였다.[뱀잡이 수리는 살모사를 결코 이길것이다.] 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아이는 결코 라는 부사를 쓰며 문장에 극적인 이미지를 주고 싶어 하는 듯 했다. 유민아. 결코는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써야해. 라고 말하니 내 마음대로 쓸 꺼라며 자신의 문장을 엄마 마음대로 고치려고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그냥 둬야하나 그래도 고쳐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유민아. 글 쓰기에는 약속이 있어서 네가 쓰고 싶은대로 쓸 수가 없어. 결코라는 말은 이기지 못할 것이다 라고 쓰는게 약속이야. 고쳐야해. 라고 단호한 자세를 취했다. 무엇이 옳은지는 사실 지금도 모르겠다. 한 두번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아이는 문장의 호응, 지켜야하는 약속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런 오류는 엄마의 말을 듣고 고치는 것에 거부감을 털어버렸다.


2022년 7월 7일. 딱 1년만에 많이 발전하였다.

아이는 일기를 곧 잘 써 내려갔다. 일기 이기는 하지만 어느 날은 생물 도감이기도 하고, 동계 올림픽이 한창일때는 스포츠 중계 형식의 구어체로 독생물 배틀을 써 보기도 하고, 요괴외 몬스터에 빠져 있을 때는 몬스터 도감을 쓰기도 했다. 요즘에는 문장을 조금 더 멋지게 바꾸는 표현을 배우기도 한다. 예전에 색종이 탱크 접기를 했을 때 어려웠어서 오늘도 어려울 줄 알았는데 쉽게 접었다고 쓰고싶어. 아.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쉬웠어? 라 말해주니 응. 생각보다 쉬웠어. 라고 말하고 엄마의 포인트를 캐치하여 생각보다 쉬웠다고 쓴다. 그럴 때는 참 기특하다. 옆에서 놀고 있는 줄 알았던 다섯살 짜리 둘째 녀석이 몇 시간 후에 엄마! 이거 생각보다 어려웠는데 쉬웠어 라고 말하는데 아까 들은 풍월을 읊어 대는 것이 너무 웃겼다. 아.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 보다 쉬웠어? 라고 하니 응, 생각보다 쉬웠어. 생각보다. 라고 말한다.


타조 이야기 , 그림이 너무 귀엽다.


글쓰기를 너무 일찍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써도 충분하다는데 지금은 글씨 쓸 시간에 바카라을 읽게 하는 것이 더 좋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 역시 있다. 아이를 너무 내 성향에만 맞추어 가르치는 것 같아 매일매일 자기 검열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결론은. 내 앞에서 나랑 이야기 나누며 글을 쓰고 고쳐보는 시간이 아마 길어야 2, 3년 일거라는 생각에 그냥 하던 대로 하기로 했다.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도 빨리 온다는데 금방 일기는 혼자 쓰거나 안 쓰게 될거고 엄마한테 바카라이며 공바카라이며 보여주기는커녕 슬금슬금 감추기 급급해 할 날이 곧 올텐데, 아이의 하루를 아이와 일기를 쓰며 곱씹어 볼 수 있는 영광스러운 지금 이 날들을 그냥 즐겨보기로 한다.



나는 이 일기장들이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 나누었던 대화들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아이의 마음 속 장기 기억 저장소에 저장되어, 살면서 어느 헛헛한 날 꺼내어 들추며 이런 어린 시절이 있었음에 잠시라도 행복했으면 그거면 되겠다. 그래 준다면 엄마는 정말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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