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 먼지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벌써 세월에 녹아내려
검은 반점에 너무 지친 모습
내 얼굴이 아니었어
내 살아온 인생에
거울에 비춰 본
나의 또 다른 분신의 자욱들
세월 따라 얼룩져 가는
미련의 흔적들
잠시 후 불을 켜고
뽀얗게 쌓인 먼지를 닦아보았어
야
너 정말 나였니
나 아닌 또 다른
자아가 거기에 있었어
그것은 처음과 다른
나의 예전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어갔던 거야
내 살아온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아닌
또 다른 너였기를 바랬을지도 몰라
갈대의 철학 연대기(1)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그분께서
늘 한쪽 가슴에 응어리진 듯
평생을 한 여린 마음을
간직하며 사셨지요
그러면서
삶의 이정표가 어디인 줄을 모르고
마냥
천지 난만한 얼굴로
한 평생을 주름진 얼굴 하나
펴지 못하시고
기어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인 은하 역에서
내리지도 못하시고
오리온성운의 별자리로 떠나갔습니다
그 한분이
나를
저를
이렇게 어렵게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으니까요
갈대의 철학 연대기(2)
나는 이렇게 태어났지
어머니
나 보기가 역겨워
바라볼 수가 없었다고 말이야
첫 탯줄을 하늘에 명을 다해
새끼 동아리 줄 매달듯이
칭칭 동여매어 태어나고
머리 가마
셋 쌍가마 타고
장가 세 번 간다고 놀림당하고
태어날 때 울지를 않아
애가 죽은 줄 알았다는
그래서 나의 사촌 외숙모께서
애가 죽었다고 기절초풍하시고
나의 어머니
그렇게 보기 싫어했던 한 아이를
하늘의 운명이 다했는지
온 사지가 늘어져 바라보았던
한낮의 고요한 산속에서
울러 퍼진 또 다른 짐승의 울부짖음을
그래도 운명 같은 연이었을까?
어머니와 나를
그렇게 갈라놓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게 삶이고
모질다는 인생이 되어왔다고
하늘에 명을 둔 운명
타고난 숙명 이어야만 하였던가
이후로
난 평생을 어머니 따라
절에 공양미 떨어질라
바람에 쓰러진 축담 쌓이기도 바빠
어김없이 돌고 돌아오는
셀 수 없었던 시간의 마음들을
추스를 시간도 없었으리
하며,
백팔번뇌에 절에 맡겨야 한다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고
늘 말씀을 더하셨어
보를 뒤집어쓰고 태어났다면서
타고난 업보를
위로받기 위해서였다고 말이야
그래서
평생의 업보를 짊어지며
남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예단할 수 없었던 기이한 타고난 운명을
까마귀보다 더 새까만
지옥의 저승사자도 무서워한 모습으로
보릿고개 먹지 못해
까마귀에게 살점 하나 던져주지 못한
앙상한 전라의 나무들처럼
그렇게 또 등짝에 커다란 둥그런
낙관을 찍고 나왔으니
이 얼마나 빡빡한 세상에
어머니 날 낳으시라 얼마나 미워했으리오
그렇게 나의 연대기는 시작되었단다
나의 인생아
사랑하는 사람아
그리운 연인아
보고싶다. 청춘아
2021.4.7 남한강 & 아미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