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을 찾아 헤매는 때가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혹시 니코틴 금단 현상이 이런 것일까 상상으로 체험해 본다. 며칠 동안 포스팅을 하지 않으면 무언가에 쫓기는 마음, 또는 밀린 숙제를 끝내지 못한 채 다음 날을 준비하는 학생인 듯 조바심이 난다. 그럼에도 마땅한 글감이 마련되지 않으면 미련을 버리고 뇌를, 욕심을 방치해 둔다. 금단 현상은 줄어든다. 이렇게 글을 그만 쓰게 되는 것인가라는 불안한 마음 한 조각만 남겨둘 뿐이다. 대단한 작가가 아니니 절필한다고 아쉬워할 사람 누가 있으랴 싶다.
그럴 때 가장 좋은 처방을 이미 알고 있다. 남의 글을 보는 것이다. 온라인카지노의 글을 읽거나 잠시 접어 두었던 바카라을 펼쳐 눈이 활자 사이를 누비다 보면 머리가 <말랑말랑> 해진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을 때 특히 그랬다. 체계화된 업무 처리 프로세스에 익숙해지고 오랜 시간 이과생 마인드의 분석적 사고로 굳은 사고 체계를 일부러 깨뜨릴 이유가 있다. 머릿속 어딘가에 WD-40을 뿌려주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러다보면 글을 짓는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어 여기저기서 불꽃이 튄다. 소위 아하 모먼트가 발동할 때를 놓치면 안 된다. 폭발은 한순간에 일어나 때로는 그 흔적을 찾기 조차 쉽지 않으니 글감이 나를 찾아와 주면 바쁘다고 무시하거나 다음 기회에라는 여유를 부려서는 곤란하다.
억눌린 자아가 폭발하듯 글감이 터지는 시간이 있다.
너무 잘 자서 잠이 깨는 새벽 언제쯤.
대체 몇 시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데 번쩍 정신이 드는,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눈이 말똥말똥 떠지지는 않는다. 사실 제일 먼저 드는 감정은 아니 왜 내 소중한 잠이 여기서 잠시 멈추는 것인가에 대한 아쉬움이다. 특히 출근해야 하는 날 중간에 깨는 것은 죄악이다. 꿀맛 같은 잠의 댓가 치고는 가혹하다. 난 나의 잠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들이 초 단위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마치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는 몸을 숨겼던 은밀한 그림자와 같다. 생각의 방향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어떤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통일시킬 수가 없다. 누군가 내 글에 달아주었던 댓글에 이렇게 답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전에 보았던 누군가의 글에 동의하는 생각이 훅 치고 들어온다. 그러다 갑자기 회사 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떤 것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면 순식간에 한 문단 정도는 후다닥 작성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럴 때면 희열이 느껴진다.
자유분방한 글감의 파도에 취해서 무진장 행복해하고, 깨어나면 꼭 이걸 꺼내어 현실화시켜야지 했지만 정작 그러지 못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꿈을 깨기 전까지 생생했던 기억이 눈을 뜨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걸 잡아두고자 침대 옆에 둔 핸드폰을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메모 앱을 켜는 순간, 자유롭게 뇌 속을 설치던 글감과 멋진 (멋지다고 느꼈던) 핵심 문장들은 흩어져 버린다. 흰색 메모앱의 배경 마냥 머리 속도 하얗게 리셋되는 것이다. 그나마 남은 몇 개의 기억을 더듬어 타자를 치다가 오타라도 나서 앞뒤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더더욱 날카로움은 사라진다. 글을 쓸 수 있다는 들뜬 감정은 차분해지고 남는 것은 몇 개의 의미 없는 단어들과 새벽에 깬 자신에 대한 원망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너무 잘 잔 새벽을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