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딸려 오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유명인한테는 일종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대중적 친근감을 증폭시키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과 비슷하게 장삼이사에게 있어서도 해당 인물의 캐릭터를 규정짓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 남자를 떠올리자 제일 먼저 딸려오는 이미지는 LG 트윈스 유광점퍼다. 대구에서 난 그가 연고지 구단 대신 LG 골수팬이 된 까닭이 수도권에서 대학교를 다녀서인지 아님 다른 계기가 있어서인지 진지하게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저 한 방을 노리는 빅 볼 야구보다는 안타와 주루를 활용한 아기자기한 야구, 이른바 신바람 야구가 오밀조밀하면서 주도면밀한 그의 성격과 제법 어울려서이지 않을까 넘겨짚어 볼 뿐이다. 무관의 설움을 벗어 던지고 29년 만에 우승을 맛본 지난해, 아주 신이 났을 그다. 재미란 걸 모르고 분투하는 그를 유일하게 울리고 웃기던 게 야구였으니 그를 내내 위로하자면 LG 트윈스가 매년 우승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른 구단 팬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또 다른 이미지로는 개구리다. 개구리라도 다 같은 개구리가 아니고 『미움받을 용기』 저자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의 다른 저서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에 등장하는 개구리가 그와 영락없이 닮았다.
개구리 두 마리가 있었다. 두 개구리는 우유가 든 단지 가장자리에서 폴짝 뛰다가 단지 속으로 풍덩 떨어지고 말았다. 한 마리는 "아, 이제 끝장이야!"라고 소리치고는 이내 포기해 버렸다. 그러고는 그저 개굴개굴 울기만 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개구리는 우유에 빠져 죽고 말았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달랐다. 똑같이 우유에 빠졌지만 그 개구리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이리저리 열심히 헤엄치며 발을 저었다.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자 발 아래가 단단해졌다. 우유가 치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구리는 폴짝 뛰어 바깥으로 뛰쳐 나올 수 있었다. (기시미 이치로,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박재현 옮김, 살림, 2015, 64쪽)
괜찮았던 시절이 없진 않았다. 미증유의 IMF 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 봄, 보험회사에 다행히 입사했다. 재바르고 영특해서 입사 동기들보다 한두 걸음은 앞서 나갔고 이십 대 후반에 이미 경기도 인근에 번듯한 아파트까지 구입해 동기들 사이에선 선망의 대상이었던 남자가 암울해진 건 결혼하고 둘째 아이가 출산한 직후였다.
회사 주인이 바뀌자 명퇴를 했고 그 뒤 벌인 일이 뜻대로 안 되는 건 감당을 하겠는데 루푸스라는 희귀병을 앓게 된 아내 병세가 심상치 않은 건 큰 근심거리였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데리고 용하다는 양방, 한방 병원을 찾아다니다 곳간 비는 줄도 몰랐다. 그럼에도 아내는 호전될 기미가 전혀 없었다. 치료를 위해 장기 입원하는 빈도가 늘어나자 남자는 엄마의 빈 자리를 메우려 두 아이의 양육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엄마가 아프지만 아이들 마음까지 병 들게 할 순 없다면서 말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자라 주었지만 남자는 점점 탈진해 갔다. 버는 건 시원찮은데 목돈 나갈 일만 늘어서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아파트를 팔고 전셋집으로 나앉았으나 그마저도 얼마 못 가 월세로 돌려야 했다. 사글세를 못 내 보증금이 까졌고 집세 덜한 외지로만 이사를 다녔다. 부모, 형제를 저세상으로 먼저 떠나 보낸 친가는 그렇다 쳐도 배 아파 낳은 자기 딸 사정만은 유독 나 몰라라 하는 장인 탓에 처가에 기댈 엄두가 안 나던 남자는 아내가 입원한 사이 병원비, 생활비를 벌어 보겠다고 다니던 교회 신자들 이 집 저 집을 돌며 아이 둘을 염치 없이 맡겨 둔 채 전단지 배부, 편의점 알바 따위 돈이 될 만한 일이면 뭐든 닥치는 대로 했다. 악전고투는 이럴 때 쓰는 성어다.
남자 사정을 못 본 척하지 못한 옛 회사 동료가 설득해 솔가해 경남 양산으로 이주한 지 벌써 15년이 되어 간다. 그 사이 아들과 딸은 머리통이 제법 굵어져서 양육 수고는 덜었을지 몰라도 아내 병은 여전하다. 최근에는 유방암 판정까지 받아 항암 치료하러 전보다 더 바쁘게 서울로 오르내린단다.
그의 인생은 아내의 득병 이후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늪에 빠진 형국인 게 냉정한 평가다. 눈꼽만 한 개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바닥만 벅벅 기다가 종국엔 숨통이 막히지 않을까 그를 아는 지인들은 늘 조마조마했다. 서울을 빠져나오라고 부추긴 옛 회사 동료가 한번은 술김에 위로랍시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자못 심각하게 물은 적이 있었다. 초탈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남자가 맞받았다.
"아파도 애들한테는 엄마야. 주어진 시간이 짧든 길든 그때까지 소중한 엄마로 남게 해 주는 게 내 역할이야.
요령껏 살아야 해. 개떡 같은 인생이라도 뒤져 보면 활로는 나름대로 있기 마련이지. 다만 쉬지 말고 굴러야 해. 구르다 보면 어느새 둥글둥글해져. 시련도 인생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낙천주의랑은 좀 다르다. 낙천주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낙관주의는 항상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바로 그 현실에서 출발하는 태도다.
(...)
아들러는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낙천적이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비관주의자가 되어 버린다고 지적했다. 낙천적인 사람은 패배에 직면해도 놀라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지독한 비관주의자가 겉으로는 낙천주의자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다.(위의 바카라, 65~66쪽)
우연히 그의 아내 카톡 사진 속 장성한 아이들을 보면서 감회에 젖었다. 그와 마주앉아 술잔 기울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