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切創)』,상처라는 텍스트로 읽어내는 타인의 얼굴

by큐티루미


교실에서 만난 구병모의 서늘하고도 따뜻한 세계


3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강남에서 논술 교실을 운영하며 수많은 학생과 문학을 읽고 토론해 왔습니다. 특히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는 인근 중학교의 오랜 필독서였습니다. 슬롯에서 낙인찍히고 외면받는 존재들을 향한 작가의 시선은 예리하면서도 다정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매번 수업할 때마다 아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며 뜨거운 논쟁을 벌이곤 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작가의 문장을 좇아온 저에게, 이번 신작 『절창』은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이었습니다. 『위저드 베이커리』가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아이들의 구원을 이야기했다면, 『절창』은 타인을 읽고 이해한다는 행위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오독의 비극을 정면으로 파헤칩니다.





상처를 통해 타인을 읽는다는 것의 비극



소설 속 주인공인 ‘아가씨’는 타인의 상처에 손을 대어 그 마음을 읽는 기이한 능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 잔혹한 재능은 범죄 조직의 보스인 ‘오언(烏焉)’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합니다.



그는 아가씨를 대저택에 가두고, 자신이 저지른 폭력과 상대측의 정보를 캐내기 위한 도구로 그녀의 능력을 활용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오언 또한 자신의 상처를 통해 아가씨에게 읽히기를 갈망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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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인간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그 실패를 거듭하며 타인에게 다가가려 애쓰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이러한 관계의 본질에 대해 소설은 다음과 같이 일갈합니다.



“깊은 물밑에 자리한 상대의 생각을 읽는 일은, 그 마음의 복잡성과 가변성으로 인해 대체로 오답을 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모두 오답인 동시에 정답일 수 있다는 마음의 속성을 전제로 시작해야 합니다.”
p.15



이는 논술 수업에서 학생들이 타인의 글을 비평할 때 제가 가장 강조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잣대로 상대의 생각을 단정 짓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소설은 ‘상처’라는 물리적 매개체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아가씨가 읽어내는 타인의 과거와 상상들은 오언의 저택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왜곡되고 팽창하며, 소통의 불가능성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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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 믿어온 상식의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



작가는 공간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인간의 인식 체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줍니다. 화자인 독서 교사가 오언의 대저택이라는 낯선 공간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감정은, 우리가 견지해온 상식이라는 껍질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이런 당연한 얘기를 해야 하나요?”

“당연한 게 뭔데요.” 당신의 세상에서. 일반의 상식에서. 슬롯적 합의라는 선에서. 그러게요, 무슨 당연함일까요.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자기가 응시하고 통과해온 것들 안에서 작동할 텐데요. 이 집 안의 세부가 그동안 내가 견지해 온 상식의 껍질을 박피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_pp.53~54



이 대목은 교육자로서 저에게 커다란 화두를 던졌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상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지극히 주관적인 세계관일 수 있다는 점, 그 껍질을 벗겨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지적 성장의 출발점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지옥과 밤이 필요한 진실의 단면



또한, 소설은 우리가 끔찍한 진실을 마주할 때 그것이 어떠한 경로로 드러나는지를 묘사하며 비극의 실체를 해부합니다.


“그러나 당신들도 일하다보면 알고 계실 텐데요, 끔찍한 무언가가 세상에 드러나려면 지옥과 밤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는 걸요.”

_p.323




이처럼 진실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어둠 속에서만 그 윤곽을 드러냅니다. 학생들이 논술문을 통해 자신만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역시 이 '지옥과 밤'을 통과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병모 작가는 이 문장을 통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비극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서늘한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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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견디는 삶의 이름으로



결국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만지며, 때로는 오독할지언정 이해하려 노력하는 그 과정 자체가 사랑의 다른 이름임을 『절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상처 없는 관계라는 게 일찍이 존재나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며, 이제 나는 상처를 원경으로 삼지 않은 사랑이라는 걸 더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___p.344


이 마지막 문장은, 비극적인 세상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손길을 멈추지 않는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구병모 작가식의 지극한 사랑 고백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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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순희의 아포리즘]



"우리는 타인의 상처를 오독하면서도, 그 흉터 속에서 사랑이라는 희망을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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