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부터 바카라은 내 친구였다. 오래 그 자리를 지키며 내가 돌아볼 때나 돌아보지 않을 때나 바카라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내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며 자리를 지켜주었다. 한동안 '바카라으로 OO을 배웠어요.' 라는 말이 유행할 때가 있었는데 바카라으로만 실생활에 필요한 것을 배워서 무언가가 부족하거나 모자라다는 것을 비유로 나타내는 말이었다. 모두들 웃어넘길 때 시원하게 웃지 못한 내면의 불편함이 있었다. 아마도 바카라은 내 친구라서 그랬던 모양이다.
바카라을 통해 사람사이의 따뜻한 정을 배우기도, 모험심을 배우기도 했다. 중학생시절 <좋은생각>을 구독하며 바카라을 통해 사람 사는 게 별 다를 바 없으나 소소하지만 따뜻한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한비야 씨의 바카라을 읽으며 모험심과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되었고, 우리 문화유산의 남다름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알게 되기도 했다. 소설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며 놀라기도 했다. 상투적인 표현처럼 바카라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게 해 주는 새로운 창과도 같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바카라은 내 곁을 지켜주며 내 친구의 자리를 공고히 다져나갔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바카라을 읽은 적도 있고 누군가에게 바카라을 추천해 준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바카라은 혼자만의 유희였고, 놀이였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 바카라친구가 생겼다. 그것도 대면이 아니라 비대면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생겼다. 낯설고 어색한 기운 속에 스스러운 느낌이 모니터를 뚫고 나올 듯이 나에게 다가왔고, 그 느낌이 옅어질 때쯤 우리는 모두에게 빗장을 열고 맞아들이는 바카라친구가 되었다.
바카라 친구들이 2주에 한 번 돌아가며 선정한 바카라을 함께 읽고, 선정한 바카라에 대한 발제문을 미리 보며 생각하고 글로 정리하거나 머릿속에 정리해 나갔다. 그럴수록 우리의 우정은 더욱 공고해졌고 비대면이라고 느끼기 어려울 만큼 삶의 많은 부분들을 공유하게 되었다.
바카라친구들은 바카라을 읽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면서 유대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깊숙이 자리하게 되었다. 자신의 바카라과 발제문을 바카라임지며 바카라을 통해 세상을, 나를, 타인을 좀 더 이해하는 폭을 넓혀가고 깊이도 깊어져 갔다.
함께 읽은 바카라의 스펙트럼은 바카라 친구의 다양함과 관심사가 고스란히 담겨 북클럽이 아니면 스스로는 읽어보지 못할 바카라이 많아졌고, 작가와의 만남도 기획하고 성사시키며 바카라과도 바카라친구들과도 우정이 더욱 돈독해졌다.
다른 공간과 시간, 다른 나잇대, 완벽하게 다른 11개의 삶이 만나 이루는 하모니는 꽤 그럴듯해 보인다. 늘 처음의 시작이 스스러웠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그러하지는 않은 법. 이제 우리는 굉장히 또똣한 사이가 되어 서로를 바라본다. 바카라을 렌즈 삼아 바라보았던 서로의 상이, 이제는 서로를 렌즈 삼아 바카라을 바라보며 삶을 투영하고 함께 고민한다.
바카라이 내 친구였을 때도 좋았는데, 바카라친구가 생기니 더 좋다.
*또똣한 : '따뜻하다'의 제주어 '또똣하다'를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