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득(體得)의 리듬이나 무위(無爲)와 완숙(完熟) 사이
나는 다행히 농고 조경교사를 하면서 몸을 사용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누군가는 많은 여러 분야 또는 영역에서 총량제를 말한다. 기호 식품, 습관을 포함하여 생각의 함량까지도 그렇게 빗댄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대꾸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슬그머니 그럴 수 있다고 혼자 생각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흙을 다루는 일도 나무를 심고 캐고,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도 모든 게 처음이어서 생경하지만 신난 셈이다. 그 낯섦이야말로 몸으로 앎을 얻는 체득의 문턱이다. 손에 붙지 않는 서투름이 오히려 모든 동작을 발견으로 만든다. 하던 일의 연속이라면 아마, 오히려 쉽게 흥미를 잃고 다른 일을 도모하였을 게 뻔하다는 심증이다.
가령, 이미 숙달된 후배가 학교에서 하는 필드에서 일은 내가 보아도 힘 하나 들이지 않는다. 옷에 뭘 묻히거나 땀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땀과 옷에 흙투성이가 되고 일한 흔적이 한눈에 훤히 보인다. 일 못하는 게 일한 표시를 낸다. 일 잘하는 이는 절대 일한 흔적이 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땀을 내지 않고 일하는 게 프로의 세계다. 그것은 일종의 무위의 경지다. 몸과 흙이 신인묘합으로 스며든다. 힘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완숙의 표출이다. 결국 나는 그 경지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꺾였다.
산에서 혼자 사는 일을 꿈꾸기에 그런 TV 프로그램에 환호한다. 나도 보면 땡긴다. 그러나 이미 달려진 나를 만난다. 이제 허리를 사용하여 숙이거나 앉거나 틀거나 이동하는 모든 일에서 멀다. 겨우 섰다가 의자 앉아 글쓰기 하는 일이 전부다. 아직도 밭일을 하며 사지를 능숙하게 부리는 이를 보면서 놀라고 부럽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는 다 사용한 것임을, 총량제에 걸렸음을 중얼댄다. 일을 할 줄 모르니 몸을 아프게 부렸다. 능숙하고 잘 다루지 못하면서 전력투구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글을 쓰고 도를 깨우치는 대오의 대열에 나섰다고 여겼다. 아무튼 다 아니다. 망가졌다 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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