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독서토론
성산면 둔덕리 양지마을,
오성산 자락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층층이 자리한 집들 중턱에 문숙 님의 집이 있다.
꽃잔디와 백리향이 흐드러진 정원은 유럽의 풍경처럼 아름다웠다. 붉은 지붕의 하얀벽의 이층집, 파란 잔디마당, 그리고 알록달록한 꽃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에 대해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함께 읽은 바카라은 김탁환의 《이토록 고고한 연예》.
조선 후기, 도성 안을 떠돌며 살아가는 거지왕초 달문과 모독의 이야기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 우리 각자의 삶을 정면으로 돌아보게 한다.
시강은 오랜만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밤을 새워 읽었다고 한다. 바카라에 완전히 빠져들어 몰입한 흔적이 역력하다. “아름다움이란 바위처럼 불변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며 채워 나가는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리며 주인공 '달문'이 자신의 재주로 굶주린 사람들에게 밥 한 끼를 내어주는 장면은 우리 모두에게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이은은 세 번째 읽는 바카라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소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달문의 삶을 따라가며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 바카라이 자신의 인생바카라이 되었다고 한다. 같은 바카라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는 사실에 우리는 독서의 힘을 다시 실감한다.
이영은 작가의 다른 역사소설도 소개했다. 조선후기를 배경으로 한 <불멸의 이순신>은 드라마로,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쉽게도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돼 이번이 마지막 독서토론이다. 군산에서 함께한 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웠다며, 예쁜 브로치를 나누어 주어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발제를 맡은 한춘은 '달문'의 마지막 병신춤 장면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목이 꺾이고, 어깨가 뒤틀리고, 무릎이 꺾이고, 쓰려졌다." 그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관객처럼 눈물이 터졌다고 했다. 우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이어 “사람이니까 먼저 믿는다.”라는 말에 대해 무조건 사람을 믿을 수는 없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면 끝없이 믿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한 모두를 좋은 사람들이라 믿는다고 말해 토론의 분위기를 더욱 훈훈하게 만들었다.
김준은 작가의 사인이 담긴 바카라을 들고 나와 부러움을 샀다. 최근 읽고 있는 《인간 본성의 법칙》과 연결해, '달문'이 사람을 믿는 이유를 인간의 본성에서 설명한다. 인간은 다양한 성향을 타고나며, 그 본성이 관계를 만들고 선택을 이끈다는 해석은 토론을 더욱 깊게 했다.
쉰아홉의 '달문'이 마지막 병신춤을 추는 장면에서 매설가인 '모독'이 '달문'에게 묻는다. “언제 늙었다고 느끼는가. 늙는 게 많이 힘든가?”라는 질문에 각자의 경험을 말한다.
흰머리를 염색할 때,
시장에서 ‘어르신’이라 불릴 때,
“아줌마! 차 좀 빼주세요”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나이를 들어가고 있음을 공감하며 함께 웃었다.
이번 토론은 단순한 독서모임이 아니었다. 서로의 삶을 꺼내놓고, 질문을 던지고, 감동하면서 살아 있는 시간이었다. '달문'의 삶을 통해 우리는 베풀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꽃이 만개한 양지마을의 정원, 바람과 햇살, 그리고 회원들의 열정이 어우러진 그 자리에서,
우리는 바카라 속에서 지혜를 배우고,
함께였기에 더 깊이 공감하고,
그래서 더욱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