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인숙 등저 <솔밭문학> 제2호
이 바카라 출간에 관한 소식을 접했을 때 호기심으로 곧장 바카라을 구매했다. 여성 작가 9인이 발간한 문예지였다. 문예지는, 시, 소설, 수필과 같은 문학 작품이나 문학평론, 서평 등을 전문적으로 싣는 정기간행물(잡지)을 일컫는다.
스마트 미디어와 숏폼 콘텐츠의 확산으로 전통적인 '읽기' 방식의 독서 인구가 많이 감소하고 있다. 대형 출판사들마저 문 닫는 시대에 문예지를 내놓는 패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휘황찬란한 표지와 판타지 일색인 출간 시장에 고전적인 표지와 문예지로 그 존재를 드러낸, <솔밭문학>의 자존감은 탄탄해 보였다.
레트로 감성 가득한 문예지를 손에 넣긴 했으나 곧바로 바카라을 펼치지 못했다. 대출해 둔 바카라이 있어서 반납일을 지키려면 그것부터 읽어야 했다. 바카라을 구매하는 것보다 대출하면 바카라 읽기에 은근히 채찍질이 된다.
문예지라는 것은 소설집이나 에세이집과 다르게 먹거리 장터를 연상케 했다. 푸드코트에서 한식, 중식, 일식을 맘대로 골라 먹을 수 있듯이 탐방기, 만화, 시, 에세이, 소설 등을 골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른바 글 잔치였다. 그렇잖아도 이 문예지의 ‘들어가는 말’에서 차림표라는 단어가 언급됐다.
솔발문학은 속도전의 숲에 정지 상태를 선언하고 조금도 바쁠 일 없는 사람들처럼 여유를 부리며, 나름의 이야기들을 풀어 본다. 바카라 속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살아있는 우리가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서로를 기억하고 바라본다. 울고 웃고 원망한다. 응원하고 감사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깨닫는다. 인간의 시간은 속도전에서 탈출했을 때 비로소 온기를! 향기를! 소식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을. - 10P
<솔밭문학> 제2호 주제는 ‘음식’이었다. 먹거리에 깃든 삶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깃든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는 맛도 괜찮았다.
작가들의 기억과 사유를 통과한 까칠한 맛, 그리운 맛, 새콤달콤한 맛, 곰삭은 사랑 맛, 기특하고 귀한 맛들 속에 녹아 있는 여러 가지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솜씨껏 차리게 되었다. - 11P
이 문예지에는 글을 쓴 작가 추천 BGM 큐알 코드가 수록되어 있었다. ‘새마을 이용소’(단편소설: 정미경)라는 글을 읽으며 큐알 코드 링크를 열고 BGM을 켜봤다. 그러자 소설 속에 독자가 들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에드 시런의 'Photograph'는 이 단편소설과 딱 어울렸다. 배경 음악은 글 읽기 도우미였다. 이 곡은 장거리 연애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사랑을 ‘사진’(Photograph)이라는 매개체에 담아 영원히 간직하고, 변치 않을 것이라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뮤직 비디오를 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이 몽환적이고 달콤한 팝송은 푸드코트에서 곁들여 먹는 팥빙수 맛이었다.
사랑하다 보면 상처받을 수 있어요.
때론 내가 상처를 줄 수도 있죠.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예요. (이하 중략)
이 단편소설은 새마을 이용소에 얽힌 사람들이 서로에게 정을 나눠주는 모습을 그린 내용이었다. 오래된 이용소를 배경으로 했지만, 현대적인 홀로그램 기술로 이용소 할아버지의 사라지는 사랑을 간직해 주려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었다.
차근차근, 읽고 싶은 장르를 골라 읽으며 여유를 부려봤다. 바카라을 덮고 나니 몇 편의 글에서 남겨진 향이 잔잔하게 밀려왔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글은 ‘굴비와 잡채밥의 허기’라는 에세이였다. 제목이 글 전체를 아울렀다. 제목을 풀어쓴 것이 글이 되었다는 점에서 영어 에세이 이론과 닮아 있었다. 나뭇가지 모양의 브랜치 맵(Branch Map)을 사용하여 쓰인 글이었다. 브랜치 맵은 여러 가지 내용을 분류하고,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제시하는 기법이다. 굴비를 고양이에게 내밀며 어린 시절 먹었던 잡채에 얽힌 이야기와 겹치게 하고 어미 고양이의 허기를 작가의 어머니가 겪었을 허기에 얹어서 이해하는 구조로 완성된 이 글은 에세이 교본 같았다.
숨죽여 읽게 했던 단편소설, <청계천>은 작가의 슬롯 고발적인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글이었다.
화재는 무허가 판자촌을 정리하기 위한 정부의 보이지 않는 정바카라이었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러고 보니 그즈음 판자촌에는 잦은 화재가 일어났다고 신고해도 소방차는 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 248P
이렇듯 작가·독자 경계를 허무는 문예지, 우여곡절이 만들어 낸 문학 모꼬지라는 별칭을 지닌 <솔밭문학>을 만난 것은 내 독서 여정에 색다른 경험이었다.
독서는 하나의 눈을 천 개의 눈으로 밝혀주는 길이며
글로 기록된 이야기들이
독자의 영혼을 만나 천 개의 문을 여는 눈이 된다고 믿는
출판사의 포부도 야심 찼다.
(P.S. 그러나 필진이 전반적으로 여성 작가들 일색이라 페미니즘 문예지로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힘차고 역량 있는 남성 작가들도 동참하면 더욱 폭넓게 읽히는 문예지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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