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세상을 비웃는 영화에 통쾌함을 느낄까

-영화 <디거>(2026)

by레빗구미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image.png
image.png

우리는 영화를 통해 무엇을 보고 싶은 걸까.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보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생각해 보면 영화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질 수 없다. 거대한 액션 영화에도 우리가 가진 욕망이 담겨 있고, 공포영화에는 인간이 느끼는 불안이 있으며, 한 편의 드라마에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관계의 문제가 담겨 있다.


특히 블랙코미디는 그런 현실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했던 것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직설적인 말을 서슴없이 던진다. 관객은 웃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그러다가 영화 속 누군가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소리치는 순간에는 이상한 통쾌함마저 든다. 마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영화가 대신 해주는 것처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영화 역시 거대한 자본으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돈을 내고 극장에 들어가 세상의 모순을 비웃고, 두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는 무엇을 바꾸는 걸까. 영화 <디거>를 보고 나서 자꾸 그 질문이 떠올랐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농담을 던지지만, 그 농담의 끝은 결국 영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과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까지 돌아온다.


[첫 번째 감정] 디거의 직설
91.png

디거(톰 크루즈)는 결코 좋아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 거대한 석유 자본을 가진 사업가이고, 자신이 가진 힘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오만함이 가득하다. 그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비판해야 할 자본주의의 추악한 얼굴처럼 느껴진다. 돈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문제조차 두리뭉술 넘어가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디거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거기 주목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는 연설 장면을 외면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세상이 얼마나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환경을 걱정한다고 말하면서도 편리한 생활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쏘아댄다. 디거의 말에는 분명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뻔뻔함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적하는 모순까지 모두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 장면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리는 세상을 망가뜨리는 자본가들을 쉽게 비난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바카라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디거처럼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걸까. 아니면 그가 만든 세상을 기꺼이 소비하는 우리에게도 조금은 있는 걸까. 하지만 어쩌면 디거는 가장 추악한 인물이기에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가장 직설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감정] 케니의 뿌듯함
IMG_7364.JPG

영화가 진행되면서 제시 플레먼스가 연기한 케니의 존재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그가 이 거대한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화가 숨겨놓았던 구조가 드러나면서 케니는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니게 된다. 디거라는 인물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그를 통해 세상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가능하도록 돈을 대는 사람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영화는 더욱 민감한 질문을 던진다. 자본가의 탐욕을 비판하는 작품을 자본을 가진 사람이 후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그에게는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잘못된 모습을 고발하는 작품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자신 역시 그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만족감.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렇다고 케니의 마음을 무조건 위선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누군가 돈을 내지 않는다면 이런 작품은 만들어지지 못한다. 자본의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서도 자본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가장 아이러니한 모습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케니의 뿌듯함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세상을 비판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자신이 비판하는 세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걸까. 아니면 자본가들에게 뿌듯함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건 아닐까.


[세 번째 감정] 관객의 통쾌함
IMG_7365.jpeg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감정은 어쩌면 관객이 느끼는 통쾌함인지도 모른다. 디거가 거침없이 세상의 모순을 지적할 때 우리는 웃는다. 그의 말이 너무나 뻔뻔해서 웃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평소에 느끼던 답답함을 대신 터뜨려주는 것 같아서 웃는다. 정치인과 기업가, 부유한 사람들의 위선을 비웃는 장면에서는 이상한 후련함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그 통쾌함은 과연 올바른 감정일까.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세상의 문제를 확인하고, 그 문제를 비웃고, 때로는 분노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무엇이 달라질까. 환경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거대한 자본은 계속 움직이며,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생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디거>를 보면서 느꼈던 통쾌함까지 의심하게 된다. 혹시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보는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고 분노했으니 무언가를 한 것 같고, 잘못된 세상을 비웃었으니 그 세상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블랙코미디가 가진 가장 잔인한 농담은 영화 속 인물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며 웃고 있는 우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나마 잠깐의 위로와 통쾌함이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 같다.


영화는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디거>는 단순히 환경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탐욕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욕망까지 바라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모든 이야기를 돈을 내고 관람하는 관객의 자리까지 끌어들인다. 처음에는 세상의 잘못된 모습을 비웃는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끝에 이르면 내가 왜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냐리투 감독의 연출은 이런 이야기에 아주 잘 어울린다. 특히 영화가 진행되면서 연극적인 공간과 영화적인 공간이 서로 뒤섞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장면의 의미가 달라지고, 무대와 카메라의 경계가 드러나면서 관객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다시 확인하게 된다. 몇 차례 이어지는 반전도 단순히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한 장치로서 보단 이야기를 바라보는 위치 자체를 바꿔놓는 용도로 활용된다.


영화는 현실을 재현하는 매체지만 결국 누군가가 만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실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현실을 보고 있는 걸까. 이냐리투 감독은 그 질문을 영화의 형식 자체로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역시 톰 크루즈다. 오랫동안 그를 대표했던 것은 달리고, 뛰어내리고, 목숨을 걸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그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추악하고 우스꽝스러우며, 때로는 너무나 뻔뻔해서 눈을 떼기 어려운 인물이 된다. 잘생긴 영웅의 얼굴을 내려놓고 디거라는 인물의 욕망과 오만함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특히 연설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길게 이어지는 카메라 앞에서 톰 크루즈는 목소리와 표정, 몸짓만으로 장면을 끌고 간다. 거대한 액션이 없어도 배우 한 사람이 얼마나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순간이다. 디거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맞는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톰 크루즈의 연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보여준 연기 가운데서도 손꼽고 싶은 장면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고, 정작 그 영화는 흥행이라는 자본주의의 기준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것마저 영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흥행 성적이 영화의 가치를 모두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개봉 당시에는 낯설고 불편했던 작품이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일도 있으니까.


<디거는>는 지금 당장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5년이나 10년 뒤에는 지금보다 더 흥미롭게 이야기될 가능성이 있다. 톰 크루즈 역시 눈앞의 흥행만을 생각했다면 이런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극장에서 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영화가 숨겨놓은 몇 차례의 작은 반전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 보았던 장면들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에는 이상하게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기 어려워진다. 조금 전까지 웃으며 보았던 장면들이 다시 떠오르고, 그 웃음이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디거>는 그런 의미에서 무척 흥미로운 영화다.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그 손가락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정말 세상의 잘못된 모습을 바꾸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 잘못을 비웃으며 잠시 후련해지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