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낙서

주룩주룩

by은정

창밖부터 달궈진 집들이

윙윙윙 앞다투어

또 다른 열풍을 만들어 대더니

헉헉거리다 여기저기서

픽픽 나가버리는 전선들의 부고.


아이고.

어느 집 초상만큼이나

안타까운 정전소식을 티브이로 보며면서도

에어컨 빵빵, 선풍기 쇅쇅

시리도록 맘껏 냉기를 들이키며

과자를 씹는 나

나만 아니면 되는 의식이 흐름

.

.

.



장마가 끝났다던 소식이

헛소문인 건가


사나흘 간 오며 가며

뿌려준 빗줄기에

논에 벼들이 일어나고

밭에 포도나무도 웃고

고춧대가 쓰러져도

분명 고추도 행복해한다


늙은 농부의 이마의 주름은

오늘도 가실 일 없건만


더위에 녹아져 가던 나는

주룩주룩, 창을 식혀주고

땅의 목을 축여주고

타들어가던 폭파직전의

공기를 식여주니

그냥 마냥 좋아서

큼큼한 냄새를 풍겨도 실실 댄다.


우당탕탕! 번쩍번쩍!

우르릉 쩍!

와이퍼 쉴 새 없는 노력에도

앞을 가리는 주룩! 두두두! 쏴아아 아!

갑자기 윙윙대며 불 밝히던

재난문자로 인해 정신이 퍼뜩 든다.


단비가 지나쳐 재난이 된 소식!

잊을만하면 믿을 수 없는 재난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재난이란 소식만 들리면 화들짝.


뜨거운 태양과 누가 이기나

실외기 열기를 의식 없이 내뿜으며

찬 냉기 즐기며 과자만 씹던 나


폭우가 눈물이 된 이들과 상관없이

단비라고 부르며 더위가 식었다고

신났던 나는


'재난문자'에 비로소 정신이 든 거다

재난이 재난인걸 익숙함에 잊어가는

부끄러운 어른 나에게.


재난이 재난인걸 모르는 이기심이

진짜 재난임을 알려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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