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이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진정한 행복이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그리스 크레타섬의 헤라클리온 국제공항은 아테네 국제공항에 이어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이용객이 많은 공항이다. 이곳은 카잔차키스의 고향으로, 그리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문호인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공항 명칭에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붙였다. 여행객이 공항에 발을 디딜 때 가장 먼저 작가의 이름을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현대 그리스 문학의 거장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그의 유년 시절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1883년 크레타섬에서 태어난 그는 오스만터키의 지배 아래 기독교인 박해와 독립 전쟁을 목격하며 자랐다. 이 거친 삶의 궤적은 훗날 그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하는 인간상'을 갈구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파리에서 베르그송과 니체를 만나 철학적 깊이를 더하고, 불교 사상을 통해 '절대 자유'를 추구했던 그의 치열한 삶의 철학과 가치관은 크레타섬을 배경으로 햐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담겨 있다.



젊은 지식인인 화자(나)는 크레타섬의 갈탄광 사업을 시작하고자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 거침없는 60대 노인 조르바를 만난다. 그는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에 순식간에 매료되어 광산 감독관으로 고용하고, 크레타섬에서의 여정을 함께 시작한다. 화자는 거칠지만 생명력 넘치는 조르바의 삶의 방식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섬에 도착한 두 사람은 프랑스 출신의 카바레 가수였던 오르탕스 부인의 여인숙에 묵으며 일과 삶을 본격화한다. 이성과 야성이라는 상반된 매력을 지닌 두 남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업적 동반자를 넘어 영혼의 동반자로 거듭난다. 크레타 해안에서 만끽하는 소박한 행복, 먹고 마시며 나누는 이들의 투박한 일상은 생기 넘치는 생명력을 더해 준다. 여기에 붓다의 영향을 받은 화자의 원고 작업이 더해지면서 소소한 행복의 의미가 쌓여간다.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p.174)


인생이 그렇듯 행복과 불행은 시소를 타듯 오고 간다. 갈탄 광산이 무너지는 위기가 닥치지만, 인부들은 조르바의 헌신 덕분에 무사히 구조된다. 이후 두 사람은 크레타섬의 온화한 자연 속에서 성탄절과 새해를 맞이하며 깊은 행복을 만끽한다. 바카라 속 지식에만 파묻혀 지내던 젊은 지식인 화자는 온몸으로 생을 살아내는 조르바를 보며 삶의 순수한 기쁨과 자유를 점차 깨달아간다. 상반된 기질의 두 사람은 부대낌 속에서 서로의 장단점을 조화시켜 나가며 적정 거리를 유지한다.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온다. 화자는 과부의 유혹에 흔들리면서도 지적인 주저함 때문에 갈등하고, 조르바와 오르탕스 부인의 지속되던 사랑은 위기를 맞이한다. 여기에 마을 사람들의 폐쇄적인 광기와 집단 폭력까지 더해지며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마치 어렵고 어두운 필연의 미로 속에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 같았다. (p.424)


화자는 광산 사업과 케이블 공사의 파산으로 모든 재산을 잃지만, 오히려 상실의 정점에서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맛본다. 그는 조르바에게 삶의 방식을 배우며 춤을 가르쳐달라고 청하고, 조르바 역시 화자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고백한다.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던 중, 화자는 실천적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났던 친구의 편지가 주는 기쁨과 불안한 꿈이 드리우는 두려움 사이를 오가면서도, 삶의 무게중심을 잃지 않고 이내 일상을 회복한다. 이처럼 사업 실패라는 절망 속에서도 그가 해방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조르바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실천적 삶의 태도를 배웠기 때문이다.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모른다”라는 조르바의 말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순간, 독자의 마음에도 깊은 카타르시스가 전해진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리스인 조르바》 속 두 인물의 극명한 대비는 이상과 현실, 관념과 실천적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낯선 환경에서 치열하게 부딪치며 도전하고 성숙해가는 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뜨거운 온기를 전한다. 비록 이별 후 각자의 길을 가더라도 서로에게 남긴 영향은 그리움과 삶의 가치로 끊임없이 확장된다. 이들의 만남과 갈등, 그리고 이별 속에서 성숙해지는 인간의 모습은 읽는 이에게 큰 울림을 준다. 진정한 행복이란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삶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데 있지 않을까.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누는 지식인과 실천가, 이들의 모습에서 참된 우정의 가치를 발견한다. 극과 극인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보완하며 성장하는 과정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