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민음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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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외로움은 평생 해소할 수 없는 본능적인 욕구일까요? 관계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다고 생각할수록 외로움의 실체가 더 또렷해지는 건 왜일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온전히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에게 위로받기보다 바카라 속의 인물에 위로받는 일이 더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를 당신에게 기억 속에 머무는 바카라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가 쓴 《인간 실격》이라는 소설이에요. 공허하고 불안한 눈빛의 남자 얼굴과 ‘인간 실격’이라는 뾰족한 제목의 표지가 호기심을 갖게 했습니다. 이 남자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인간의 자격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불안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 여린 심성이 느껴졌어요.
이야기는 화자(소설가)가 바라본 남자의 사진 석 장에 대한 기묘한 느낌으로 시작됩니다. 한 장은 유년 시절의 아이가 양손을 꽉 쥐고 괴상한 표정으로 웃는 모습이었어요. 아이는 두 번째 사진 속에서 교복 차림의 대단한 미남으로 깜짝 놀랄 만큼 변했지만, 꽤 능란한 미소의 이상한 미남이었다고 해요. 또 다른 한 장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에 표정이 없고 인상조차 없는 기괴한 모습이었어요. 그의 굴곡진 삶의 모습이 그려지나요?
이어 세 권의 노트에 수기로 적은 남자의 고백이 시작됩니다. 액자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은 ‘요조’예요. 그는 부유하고 권위적인 부모의 형제 많은 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마음이 여리고 섬세했던 요조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과 자신이 꿈꾸는 행복의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자신만 별난 놈인 것 같아 불안과 공포에 떨었어요. 이웃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라 두려워하던 그가 소통의 방법으로 터득한 것은 ‘익살’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 밖에 안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17쪽)
요조는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법을 알지 못하는 아이였어요. 요즘 말로 그는 MBTI 극 I 유형이었을까요? 요조의 모습에서 저의 유년 시절이 떠올랐어요. 저 또한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지 몰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웠거든요. 활달하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 속에 뒤섞여 노는 것이 무서워 언니의 등 뒤로 숨곤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이 작게 느껴지고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연약한 모습을 보여줄수록 그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익살’은 저에게도 소통의 무기가 되어 지금까지도 필살기로 몸에 장착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익살이라는 가면을 쓰고 어느 틈엔가 진실을 단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게 되어 버린 요조의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되었어요. 그에게는 아버지와 가족, 이웃, 친구 중 누구도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자신이 원했던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 그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로 유일한 관심사였던 미술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삼류 만화가로 세상에 내던져져 존재감 없이 살아가게 돼요. 사람들의 위선과 가식에 순수함을 잊어버리고 술과 여자, 마약에 중독되어 파멸해 가는 삶을 살았어요.
요조의 여린 심성을 이해하고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또는 그가 가면을 벗고 용기 내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그의 삶이 달라졌을까요? 지나온 제 삶을 돌아보니, 힘들 때마다 저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손 내밀어주는 누군가가 한 명은 있었더라고요.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이었던 요조처럼, 익살로 오늘을 견뎌내며 살아가 있을 수많은 ‘요조’가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 후, 상대가 미소 지으면 안도하며 기뻐하던 제 모습도요. 저만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마음도 생겼어요.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겠지요.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를 바라봐주고 미소 지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잖아요. 어른이 되어도 인간과 슬롯가 원하는 관계의 끈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익살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소통의 도구이자 두려움을 줄여주는 생존의 가면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어릿광대처럼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만든 위선과 허위 속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겠지요. 자신만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감춘 채 타인의 마음은 외면하면서 말이죠. 요조의 익살을 상기하며 놓치고 있었던 타인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내 마음 돌보듯 타인의 마음도 돌아보며 서로에게 따스한 미소를 건네는 나와 너,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