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어려워질 때

자연스러움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by고민지


자연스러움으로 돌아가는 연습

레슨을 하다 보면 자주 건네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만 힘을 빼볼까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일수록 이 말이 쉽지 않습니다.


높은음을 앞두고 평소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자세를 바로 세우고, 배에도 힘을 줍니다. 곧 어려운 부분이 나온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고 있기라도 하듯 턱은 조금씩 굳고 어깨는 올라갑니다.


아직 소리를 내기도 전인데 몸은 이미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단단히 준비할수록 오히려 소리가 어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음을 내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하려고 합니다.


호흡해야 하고,
지지해야 하고,
입을 열어야 하고,
좋은 소리를 내야 합니다.


배운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이, 필요한 힘 위로 또 다른 힘이 겹쳐집니다. 그럴 때는 새로운 방법을 하나 더 알려주기보다 잠시 멈춰봅니다.


“이번에는 더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한번 불러볼까요?”


처음에는 오히려 어색해합니다.
힘을 빼면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노래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턱을 조금 놓고, 올라간 어깨를 내려봅니다. 소리를 어떻게든 만들어내려던 마음에서도 잠시 한 발 물러납니다. 그러다 예상보다 편안하게 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하나 더 배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럴 때면 생각합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몸에는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마저 애써 만들어내게 될 때가 있다는 것을요.




오래 노래했다고
언제나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어요

열두 살 때부터 성악을 공부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배우고 크고 작은 무대에 올랐으니, 이제는 노래하는 일이 제법 몸에 익어 있을 법도 합니다.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몸의 어느 부분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는지, 턱과 어깨의 긴장이 소리를 어떻게 바꾸는지도 압니다.
그런데 안다는 것과 언제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바카라상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바카라을 읽고 공부합니다. 글을 쓰고 강의를 기획합니다. 자료를 만들고, 노래가 아닌 말로 사람들 앞에 서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오래된 정체성 위로 다른 일들이 하나둘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다시 무대에 오르는 날이면 여전히 잘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옵니다.


'잘해야지.'
'좋은 소리를 내야지.'
'그래도 오랫동안 노래했는데.'


아주 짧은 생각인데도 몸은 그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챕니다. 평소보다 숨을 많이 가져가려고 하고,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 어딘가를 붙잡습니다. 이미 할 줄 아는 일을 하고 있는데 마음이 그 위에 한 겹의 힘을 더 얹습니다. 그 순간에는 저 역시 레슨 시간에 자주 건네던 말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조금만 힘을 빼볼까요.'


열두 살부터 노래했다고 해서 자연스러움이 영원히 몸에 저장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다만 요즘은 그 감각을 조금 더 빨리 발견하려고 합니다.


턱은 어떤지,
어깨는 어디에 있는지,
호흡은 편안하게 오가고 있는지.
그리고 몸보다 조금 더 안쪽에 있는 마음도 살펴봅니다.


지금의 힘은 노래하기 위해 필요한 힘인지,
아니면 잘하고 싶어서 더해진 힘인지.

그 둘을 구별하는 일도 제게는 여전히 연습입니다.




아이들을 보며 자연스러움을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노래하다 보면 가끔 부러운 순간이 있습니다. 노래를 잘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주 어린아이들은 몸을 쓰는 일에 거침이 없습니다. 신이 나면 뛰고, 웃음이 나면 크게 웃습니다.


음악이 들리면 몸부터 움직이고, 저 멀리 있는 친구를 부르고 싶으면 목소리를 힘껏 던집니다.

배에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호흡을 어디까지 내려야 하는지, 울림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뛰고, 숨 쉬고, 웃고, 부릅니다.

몸과 숨과 목소리가 아직 서로 멀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레슨을 하면서 아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좋은 소리를 만드는 방법과는 조금 다른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은 언제부터 이렇게 자신의 몸을 의식하며 살게 되는 걸까'


'언제부터 소리를 내기 전에 잘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 지를 살피게 되는 걸까?'


물론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제가 어린아이처럼 노래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의 몸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몸도, 생각도, 마음도 달라졌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그때의 자연스러움이 무엇이었는지를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조금씩 무거워지는 일일까요

사람의 몸은 중력의 영향을 받습니다.


가만히 두면 자세는 편한 쪽으로 기울고, 움직이지 않으면 몸은 굳습니다. 예전과 같은 체력을 당연하게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건강 역시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문득 정신과 마음에도 저마다의 중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험은 많아집니다. 덕분에 조금 더 현명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을 쉽게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익숙한 방식이 생기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선명해집니다.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이 새로운 것을 바라보는 눈을 가릴 때도 있습니다.

마음에도 살아온 흔적이 남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경계를 만들고,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를 줄이는 법을 배웁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뛰어들던 마음에도 어느새 여러 조건이 붙습니다.


그 모든 변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경험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신중함은 때로 나를 지켜줍니다. 살아온 시간만큼 생기는 무게 역시 한 사람의 깊이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가끔은 묻게 됩니다.


'단단해진 것과 굳어진 것은 같은 것일까?'


'나를 지키는 것과 마음을 닫는 것은 어디에서 달라질까?'


'익숙해지는 것과 무뎌지는 것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몸이 중력에 이끌리듯 생각과 마음도 가만히 두면 익숙하고 편한 쪽으로만 기울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자연스러움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자연스럽다’는 말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러움에도 연습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몸이 굳으면 다시 움직여야 합니다.
오래 앉아 있었다면 일어나 걷고, 굳어 있는 곳을 움직이며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깨웁니다.


정신도 가끔은 익숙한 생각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오래 믿어왔던 생각에도 다시 질문을 던져봅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만들어둔 벽이 어느새 너무 높아지지는 않았는지,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경계가 세상을 향한 문까지 닫아버리지는 않았는지 가끔 들여다봅니다.


요즘 제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움은 어린 시절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시간이 흐르며 내게 생긴 무게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무게에 완전히 끌려가지는 않는 상태.


몸이 굳으면 다시 움직이고,
생각이 굳으면 다시 질문하고,
마음이 닫히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아주 조금이라도 다시 열어보는 것.


어쩌면 지금의 나이에 제가 연습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열두 살의 제가 노래를 더 잘하고 싶었던 마음도, 지금의 제가 강의를 더 잘하고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마음도 결국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여전히 좋습니다.


무언가에 마음을 쏟는 것도 좋고, 어제보다 조금 나아지고 싶은 마음도 소중합니다. 그러니 문제는 잘하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아닐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어느 순간 나를 지나치게 밀어붙이고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노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힘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몸을 지탱하는 힘이 필요하고, 호흡을 조절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한 곡을 끝까지 끌고 갈 집중력도 필요합니다. 다만 필요한 힘과 불필요하게 더해진 힘은 다릅니다.


- 몸의 중심은 단단하면서 어깨는 편안할 수 있습니다.
- 호흡은 충분히 지지하면서 턱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 잘하고 싶으면서도 나를 몰아붙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힘을 뺀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합니다. 모든 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들어가 있는 힘 가운데 지금 필요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는 일.

이 것이 제가 오래도록 찾고 있던 힘의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마음도 함께 연습합니다

요즘 무대에 서기 전, 예전보다 마음을 조금 더 오래 살펴봅니다. 잘하려는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막지는 않습니다.


'그래, 잘하고 싶구나.'

그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몸을 봅니다. 턱을 한번 움직여보고, 어깨를 내려봅니다. 숨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느껴봅니다.


때로는 조금 더 안쪽을 향해 묻기도 합니다.

지금 나는 노래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잘하는 나를 보여주려고 하는지. 답이 언제나 깨끗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아마 둘 다일 때가 더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질문을 하고 나면 아주 작은 공간이 생깁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과 실제로 노래하고 있는 나 사이에 작은 틈이 생깁니다.


그곳에서 다시 숨을 쉽니다. 그러고 나면 몸이 알고 있던 것을 조금씩 되찾습니다. 소리를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한 음 한 음을 붙잡지 않아도 음악은 흘러간다는 것.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훈련해 온 몸은 제가 배워온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물론 매번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잘하고 싶어서 힘이 들어가고, 무대가 끝난 뒤에야 '아, 오늘은 조금 붙잡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날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움은 이제 제게 완성된 상태라기보다 자꾸 돌아가려는 방향에 가깝습니다.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는 것.


마음이 굳었을 때 그 굳음을 나 자신이라고 믿어버리지 않는 것. 잘하려는 마음이 나를 너무 앞질러 갈 때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내 호흡의 속도로 돌아오는 것.


그렇게 몸과 정신과 마음을 계속 살펴보는 일입니다.



잠시, 나에게 묻습니다

어쩌면 자연스러움을 되찾는 일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보다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몇 가지를 물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나는 무엇을 잘하려고 애쓰고 있나요?'

'그 마음 때문에 몸이나 마음에 필요 이상의 힘을 주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 더 힘을 내는 일일까요, 아니면 이미 쓰고 있는 힘을 조금 덜어내는 일일까요?'


오늘 하루만큼은 잘하려는 마음마저
애써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마음이 나를 너무 앞질러 가고 있다면,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나의 호흡의 속도로 돌아와 보는 것으로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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