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남겨 둔 꿈

by단미

주말이지만, 이른 아침 눈이 떠진다. 게으름을 피워도 좋으련만 정해진 시간이 되면 몸이 먼저 움직인다. 일찍 일어나 할 일 없이 집을 나선다.


작은 배낭을 메고 익숙한 길로 들어선다. 아직 사람의 발길이 뜸한 산길에는 밤새 내려앉은 서늘한 공기가 남아 있다. 발밑에서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리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에 나뭇잎이 반짝반짝 빛난다. 물기를 머금은 축축한 흙길이 푹신하게 느껴진다.


초록으로 무성해진 숲을 걷다 보면 머리가 맑아진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세상에 없는 듯 한가로운 마음이 든다.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어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다.




헬리콥터 소리가 산의 정적을 깨뜨린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핀다. 나무에 가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요란한 소리는 산 전체를 흔들 듯 울린다. ‘이른 시간인데 벌써 사고가 났나?’ ‘큰 사고가 아니어야 할 텐데…….’ 걱정하는 마음으로 멀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가파른 바위에 매달린 사람이 발끝으로 바위를 딛고 조금씩 몸을 끌어올린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저 높이를 어떻게 올라갈까 싶으면서도 시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한 손을 옮기고, 발을 바꾸어 디딜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이 따라 움직인다. 10년만 더 일찍 산행의 맛을 알았다면 암벽등반을 시작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체력만 받쳐주었다면 저 사람들처럼 바위를 오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암벽등반은 도전하지 못했지만, 맨몸으로 바위를 타는 일로 위안 삼았던 때도 있었다. 경사진 바위 앞에 서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올라갈 수 있을까? 한번 가볼까? 그래, 가보자!’ 망설임도 잠시, 이내 설렘이 앞섰다.


한 발을 바위에 올려놓고 다른 발을 어디에 디딜지 살폈다. 발바닥에 힘을 주며 몸을 조금씩 밀어 올렸다. 몇 걸음 올라서고 나서야 신발의 힘을 알 수 있었다. 바위에 발을 디딜 때마다 신발 밑창이 단단하게 버텨 주었다. 친구가 떨어지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던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산행을 시작하면서 등산화를 사러 갔을 때는 어떤 신발을 골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신어 보고 편한 신발, 내 발에 딱 맞고 보기에 예쁜 신발을 골랐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릿지화였다. 처음부터 바위를 탈 수 있는 신발을 고른 것이다. 어쩐지, 산행 초보이면서도 바위만 보면 설레더라니.


산악회를 따라다니며 힘든 산행 구간도 많이 다녔다. 바위가 있는 구간이면 돌아가는 법 없이 꼭 올라가곤 했다. 그렇게 신나서 좋아하던 산행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암벽등반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 내 몸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가볍게 지나쳤을 오르막에서도 발걸음이 느려졌다. 몇 걸음 걷다가 숨을 고르며 잠시 멈춰 섰다. 식은땀이 흐르고 온몸이 후들거렸다. 늘 앞서 걷던 산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결국 암벽등반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주말마다 나만의 코스를 걷다 보면 가끔 헬리콥터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누군가 무사히 구조되기를 바라면서도, 한때 꿈꾸었던 암벽등반이 떠오른다.


한때는 무서울 것 없다는 듯이 덤벼들었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그때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지금쯤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바위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나?


예전 같으면 바위가 보이는 순간 먼저 다가갔겠지만, 이제는 길가에 멈춰 서서 바위의 모양을 바라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이어간다. 바위와 한 몸이 되지 못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이제는 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나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저마다의 때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암벽등반을 하는 것도, 나만의 코스를 걷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