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근사한 슬랙스를 구매하고 수선하는 법

byMickey

*본래 슬랙스는 여성 울 팬츠, 남성은 트라우저 라고 하는 것이 명확하지만 편의를 위해 칼럼에서는 슬랙스로 통일합니다.


울 소재로 만든 슬랙스는 꼭 회사에 입고 가기 위해 필요한 옷은 아닙니다. 오히려 잘 만든 울 슬랙스는 평범한 일상복을 조금 더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옷에 가깝습니다. 블랙이나 그레이 슬랙스에 흰 티셔츠 하나를 툭 입고, 허리에 괜찮은 벨트 하나만 더해도 충분합니다. 니트나 셔츠는 물론이고 스웨트셔츠, 운동화와 함께 입어도 좋습니다.

상의가 평범할수록 좋은 바지가 가진 힘은 더 잘 드러납니다. 그래서 저는 옷장에 잘 만들어진 울 슬랙스 몇 벌 쯤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슬랙스를 사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꽤 단순합니다. 좋은 소재,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과하지 않게 잘 떨어지는 핏. 문제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바지를 찾는 일입니다. 이번 칼럼은 제가 슬랙스를 고르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정장 브랜드의 이월 상품을 산다

슬랙스를 구매할 때 제가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것은 정장을 전문으로 만드는 브랜드의 이월 상품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정장을 오래 만들어온 브랜드는 기본적으로 울 원단과 바지 패턴을 다루는 데 익숙합니다. 바지가 허리에서 어떻게 잡혀야 하는지, 엉덩이와 허벅지를 지나 밑단까지 어떤 선으로 떨어져야 하는지를 오랫동안 고민해 온 브랜드들입니다.

그런 브랜드의 제품이 시즌을 지나 이월 상품이 되면 가격이 상당히 낮아집니다. 제품은 출시된 지 1년이 지나면 50%의 할인율로 시작하는 게 보통입니다.

특히 슬랙스는 유행을 크게 타지 않는 아이템입니다. 한두 시즌 전 상품이라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거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상 가격이었다면 망설였을 만한 좋은 원단의 바지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이월 상품이 훨씬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구매는 온라인몰이 가장 쉽지만 아직 브랜드의 핏을 잘 모르겠다면 매장에 들러 한 번씩 입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나와 잘 맞는 브랜드를 찾으면 그때부터 팬츠를 구매하는 건 매우 편해질 겁니다.



색상은 블랙, 그레이, 네이비부터 고른다

슬랙스를 처음 산다면 색상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블랙, 그레이, 네이비. 결국 가장 많이 입게 되는 색은 이 세 가지입니다.

블랙은 가장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흰 티셔츠부터 가죽 재킷까지 거의 모든 옷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레이는 조금 더 젠틀하고 진중합니다. 니트나 스웨트셔츠, 운동화를 함께 신었을 때 특히 좋습니다. 네이비는 그레이보다 젊고 블랙만큼 딱딱하지 않습니다. 셔츠와 입으면 클래식하고, 티셔츠와 입으면 편안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브라운도 꽤 좋은 선택입니다. 크림, 베이지, 네이비, 블랙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기존의 블랙과 그레이보다 조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다만 가장 먼저 사야 할 색은 결국 기본색입니다. 슬랙스는 눈에 띄는 바지보다 자주 입을 수 있는 바지가 더 좋은 바지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Google / 블랙-그레이-네이비 컬러. 베이직하면서도 성격이 은근히 다릅니다.


가능하면 울 함량이 높은 것을 고른다

제가 이월 상품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울 함량이 높은 슬랙스를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울은 같은 색상의 바지라도 폴리에스터 중심의 원단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만듭니다. 표면에 은은한 깊이가 있고, 움직였을 때 원단이 자연스럽게 떨어집니다. 무엇보다 바지 자체가 지나치게 번들거리거나 가볍게 보이지 않습니다. 티셔츠 하나만 입었는데도 전체적인 인상이 조금 더 정돈되어 보이는 이유가 이런 데서 생깁니다.

물론 울 함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좋은 슬랙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원단의 조직이나 두께, 패턴과 봉제 역시 중요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가격과 디자인이라면 저는 울 함량이 높은 제품을 먼저 봅니다. 특히 이월 상품이라면 평소보다 한 단계 좋은 소재를 선택하기도 훨씬 수월합니다. 그게 이월 울 슬랙스를 사는 가장 큰 재미입니다.



핏은 멋을 부리기보다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것을 고른다

슬랙스를 입을 때 지나치게 슬림한 핏을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유행하는 실루엣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넓은 바지를 선택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허리와 엉덩이가 자연스럽게 맞고, 허벅지에서 밑단까지 선이 편안하게 떨어지는 바지입니다. 서 있을 때뿐 아니라 앉았을 때도 편해야 합니다.

슬랙스는 특별한 날 한 번 입는 옷보다 일상에서 자주 꺼내 입을 수 있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바지를 입어봤을 때 가장 먼저 옆모습을 봅니다. 엉덩이 아래에 불필요한 주름이 많이 생기지 않는지, 허벅지가 지나치게 붙지 않는지, 무릎 아래에서 바지 선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지를 확인합니다. 좋은 슬랙스는 몸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의 실루엣을 조금 더 정돈해 줍니다.

출처 : Google / 엉덩이와 허벅지가 여유있는 것이 슬랙스의 드레이프성을 보여주기에 좋습니다.


기장은 짧게 자르지 않는다

좋은 슬랙스를 샀다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수선입니다. 그리고 슬랙스에서 가장 중요한 수선은 역시 기장입니다.

슬랙스를 지나치게 짧게 입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발목이 훤히 드러날 만큼 짧은 길이는 특정한 스타일에는 어울릴 수 있지만, 신발을 바꾸었을 때 활용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또한 다리가 짧아보이게 됩니다. 팬츠로 표현하는 다리의 길이가 짧아지는 직관적인 해석 때문이죠.

반대로 밑단이 주름이 질만큼 긴 것도 일상적으로 입기에는 부담스럽습니다. 마치 얻어 입은 느낌이 날 겁니다.

가장 현실적인 길이는 신발 위에 밑단이 살짝 닿으면서 가볍게 한 번 정도 주름이 생기는 정도입니다. 이른바 약간의 브레이크가 생기는 길이입니다. 이 정도면 운동화를 신어도 자연스럽고, 굽이 있는 구두나 부츠를 신었을 때도 바지의 선이 크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짧은 바지보다 조금 더 우아하고, 지나치게 긴 바지보다 훨씬 단정합니다.

출처 : Google / 짧음 > 원브레이크 적당함 > 너무 김. 이렇게 비교하면 왜 가운데 정도의 기장이 좋은지 알수 있습니다.



내 다리보다 신발을 기준으로 수선한다

바지 기장을 맞출 때 자신의 다리 길이만 생각하면 의외로 실패하기 쉽습니다. 결국 바지의 끝은 신발과 만납니다. 그래서 평소 어떤 신발과 가장 많이 입을 것인지까지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운동화도 신고 구두도 신는다면 운동화에 딱 맞춰 짧게 자르기보다 조금 여유를 두는 편이 좋습니다.

가능하다면 수선할 때 평소 가장 자주 신는 신발을 직접 신고 가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바지 밑단이 신발 위 어디쯤 떨어지는지 직접 확인하고 결정하면 됩니다. 슬랙스 수선에서 몇 센티미터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좋은 원단과 좋은 핏의 바지를 사놓고 기장을 잘못 자르면 그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합니다.

출처 : Google / 기장을 잡을 땐 꼭 신발을 신고 잡는 것을 추천합니다.

슬랙스를 잘 사는 방법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정장을 잘 만드는 브랜드의 이월 상품을 찾아보고, 울 함량이 높은 제품을 고릅니다. 색상은 블랙, 그레이, 네이비부터 시작하고 조금 변화를 주고 싶다면 브라운을 선택합니다. 핏은 과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것을 고르고, 마지막으로 신발 위에 살짝 브레이크가 생길 정도로 기장을 맞춥니다.

이 정도만 지켜도 실패할 가능성은 꽤 줄어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른 좋은 슬랙스는 의외로 자주 입게 됩니다. 흰 티셔츠 하나를 입고 운동화를 신어도 좋고, 니트와 구두를 더하면 조금 더 단정해집니다. 셔츠나 재킷을 입으면 당연히 잘 어울립니다.


결국 잘 만든 울 슬랙스의 장점은 화려함이 아닙니다. 별것 아닌 옷을 입었는데도 사람이 조금 더 근사해 보이게 만드는 것. 좋은 슬랙스란 바로 그런 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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