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가 사라진 럭셔리, 선명해진 계급

byMickey



한때 명품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가방을 가득 채운 모노그램과 커다란 금속 버클은 제품의 가격과 소유자의 경제력을 대신 설명했습니다. 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명품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로고는 작아지고 색상과 디자인은 단순해졌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니트와 코트지만 가격은 수백만 원을 넘습니다.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잘 만든 옷일 뿐이지만, 아는 사람은 원단과 봉제, 실루엣만으로 그 가치를 알아봅니다. 이를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로고 대신 소재와 완성도를 강조하는 명품 소비)’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미니멀리즘 유행으로만 설명되진 않습니다. 명품은 오랫동안 부와 지위를 전달하는 슬롯적 언어였으며, 로고가 없는 명품도 여전히 신호를 보냅니다. 다만 그 신호를 누구나 읽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소비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만 읽게 됐다는 것입니다.



과시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2010년 『Journal of Marketing』에 발표된 연구는 로고가 얼마나 눈에 띄는지를 ‘브랜드 현저성(brand prominence)’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경제력이 높으면서 지위를 과시하려는 욕구가 낮은 소비자는 같은 집단의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은밀한 명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자신의 지위를 널리 알리고 싶은 소비자는 눈에 잘 띄는 로고를 선호했습니다.

이 차이는 흔히 올드머니와 뉴머니의 대비로 설명됩니다. 새롭게 부를 얻은 뉴머니에게 로고는 자신이 다른 계층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매개체이자 확성기가 됩니다. 반면 여러 세대에 걸쳐 부와 지위를 물려받은 올드머니는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을 불특정 다수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들에게 옷은 “나는 부자입니다”라고 외치는 직관적 신호라기보다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를 알아보는 수평적 암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로고 없는 명품은 과시의 소멸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과시가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만 인정받으려는 방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출처 : Google / 왼쪽 에르메스, 오른쪽 루이비통 컬렉션. 올드머니와 뉴머니의 상반된 이미지




가격과 안목이라는 이중의 경계

명품 가격을 좋은 원단과 숙련된 장인의 노동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가격에는 물리적인 품질뿐 아니라 브랜드의 역사와 희소성, 유통 방식, 매장에서의 경험, 그리고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슬롯적 의미까지 포함됩니다.

소비자는 가방이나 코트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물건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지, 어떤 집단에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하는지까지 함께 구매합니다. 명품 가격은 원가에 이윤을 더해 만들어지는 숫자라기보다 사람들이 브랜드의 상징을 얼마나 강하게 믿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슬롯적 가격입니다.

프랑스 슬롯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을 순전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세련됐다고 느끼는지는 성장 환경과 교육, 반복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로고가 큰 가방은 브랜드 이름만 알면 알아볼 수 있지만, 로고 없는 고가의 코트를 구분하려면 원단과 재단, 브랜드 역사에 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즉 사치품이라 불리는 고가의 상품과 문화를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일종의 지식인 것입니다.

경제력이 있어야 사치품을 구매할 수 있지만 경험의 문화자본이 있어야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로고 명품이 가격으로 경계를 만들었다면, 콰이어트 럭셔리는 가격과 안목이라는 이중의 경계를 만듭니다.




조용함도 새로운 로고가 됩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베이지색 니트와 네이비 블레이저, 로퍼를 조합하면 누구나 올드머니처럼 보일 수 있다는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재산과 교육, 생활양식이라는 복잡한 배경이 몇 가지 패션 아이템으로 압축된 것입니다.

드러내지 않는 부를 동경하는 트렌드가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는 점도 아이러니합니다. 조용한 럭셔리를 입고 적극적으로 촬영해 공유하는 순간, ‘조용함’ 자체가 또 하나의 로고가 됩니다.

그러나 ‘진짜 부자는 로고가 있는 명품을 입지 않는다’는 주장 역시 지나친 일반화입니다. 부유층 안에서도 취향과 과시 욕구는 다릅니다. 로고가 큰 제품을 산다고 모두 허영적인 것도 아니며, 로고가 없는 제품을 산다고 모두 안목이 깊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로고의 유무가 아닙니다. 그 물건이 누구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며, 자신은 왜 그 신호를 읽고 싶어 하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출처 : Google / 로로피아나 컬렉션 이미지.


명품은 조용해졌지만 계급의 신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목소리를 낮춤으로써 알아들을 사람에게만 들리는 더 폐쇄적인 언어가 됐습니다. 그래서 로고 없는 명품을 둘러싼 진짜 질문은 “왜 이렇게 단순한 옷이 비싼가”가 아닙니다.


“나는 이 옷의 가치를 정말 좋아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 옷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것일까요.”


럭셔리, 사치품의 로고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브랜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욕망의 다른 표현일 뿐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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