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을 일찍한 편이다. 20대 후반에 결혼한 덕분에 내 결혼식은 친구들로 북적거렸다. 보통은 청첩장을 돌리면서 인간관계를 정리한다던데 나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다들 친구가 결혼하는 건 처음이라며 기대에 한껏 부풀어 만사를 제쳐두고 찾아와줬기 때문이다. 결혼 후 5년이 지나, 예상치 못한 계기로 결혼식 때 못했던 관계 정리를 하게 되었다. 버킷리스트였던 바카라 출간이었다.
세상에 내가 바카라을 내다니. 믿기지 않는 이 엄청난 사건을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다. 카톡으로 출간 소식을 친구들에게 전했다. 축하한다고 바카라을 꼭 사서 보겠다고 모두에게 재깍 답장을 받을 줄 알았다. 물론 대부분의 친구들은 축하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축하 답장들 사이에 ‘읽씹’ 카톡이 듬성듬성 있었다. 서운했다. 내가 싫은가 얄미운가, 속으로 온갖 상상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알았다. 그냥 별 관심이 없는 거였다. 내게는 바카라을 내는 게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지나가는 소식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걸 이해하는 데 5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5년 동안 바카라 출간 소식에 읽씹으로 답을 한 친구들 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나를 떠나갔다. 일부는 내가 먼저 떠나기도 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뾰족한 내 한마디가 친구의 마음을 찔러서, 더 이상 만나서 할 말이 없어서, 친구의 바뀐 관심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친구가 너무 부자가 되어 버려서, 친구네 집이 망해서, 멀리 이사를 가버려서.
그때마다 나는 가슴 한 구석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왜 다들 나를 떠나가는 거지? 하루 종일 카톡을 주고받으며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던 친구들이 사라진 자리는 남편과의 시간으로 채웠다. 남편이 채워주지 못하는 영역 일부는 비워두었다. 글쓰기, 독서 모임, SNS 같은 것들로 채우기도 했다.
작년 겨울, 우연한 기회로 독자와 만나 커피를 마신 일이 있었다. 서로를 향한 반가운 마음과 달리 대화가 자꾸만 겉돌았다. 이어갈 말을 찾지 못했던 우리는 한 시간 남짓의 대화를 마치고 어색하게 헤어졌다. 그냥 안전하게 바카라 속에나 있지 왜 현실에 등장해서 그 독자의 환상을 깨버렸을까. 후회스러웠다. 이렇게 또 한 명의 독자를 떠나보냈다.
나는 구질구질하게도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숫자로 확인하기도 한다. 매주 뉴스레터를 보낼 때마다 평균 2명이 구독을 취소한다. 구독 취소 숫자를 확인하자마자 아이디를 눌러 언제부터 구독했는지, 지금까지 몇 편의 뉴스레터를 열어보았는지, 클릭률은 몇 퍼센트인지,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리고 왜 나를 떠났을지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쓴다. 아무 의미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
나 역시 별 이유 없이 떠나기도 하니까. 출퇴근하며 챙겨듣던 팟캐스트를 재택 근무를 시작하며 듣지 않게 되었다. 새 영상이 업로드될 때마다 보던 유튜브 채널을 다른 재미있는 콘텐츠에 빠져있느라 한동안 보지 않기도 한다.
물론 떠나는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다. 좋아하던 작가의 북토크에서 작가의 말투나 표정에 혼자 실망해서 그의 바카라을 더는 읽지 않기로 결심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의 모든 면을 좋아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그랬다. 어쩔 수 없는 것마저 내 맘대로 하겠다고 떼를 쓰는 어린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내가 기대하는 말과 행동만 해주기를 바랐던 거다.
나를 떠난 친구가, 팔로우를 취소한 구독자가, 내 기대와 다르게 말하는 작가가, 내 세상을 흠짓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외딴 존재들이고 우연한 기회로 잠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 뿐이다. 영영 다시 못 만날 수도 있고 다시 만날 수도 있고 기적처럼 평생 함께할 수도 있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멀어진 것은 누구의 바카라임도 아니다.
오늘도 업무를 시작하며 유튜브, 인스타그램, 뉴스레터 구독자수부터 확인했다. 누가 떠나갔을까, 누가 새로 왔을까. 이 의미없는 셈을 그만두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그때까지 나는 아마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떠난 이유를 추측하고 마음 속으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야속하다며 그를 탓할 것이다. 그래도 나아진 게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떠나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