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가는 왜 회사를 떠나는가

연봉? 복지? 출퇴근 거리? 그런 거 말고

byMaven

데이터 분석가가 결국 회사를 떠나는 몇가지 이유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인사, 재무 등 다양한 분야에 계신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데이터 분석가들도 제대로 된 데이터를 분석하지 못하면 회사를 떠난다.


너무 당연한 얘기다.

물론 회사가 크고 유명해서, 월급이 많아서, 복지가 좋아서, 워라밸이 좋아서 다니는 경우도 있다.

굳이 내가 꿈꾸던 데이터 분석 업무가 아니어도 “뭐, 이 정도면 괜찮지” 하며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마음 한쪽에는 조바심이 생긴다.


이 일이 정말 내 커리어(career, 경력)가 되고 있는 걸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중에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왔을 때, 나는 무엇으로 다시 시장에 설 수 있을까.


일이라는 게 그렇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온라인 게임인에게 일은 단순히 월급을 받는 수단만은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의 미래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데이터 분석에 대한 거창한 포부를 안고 들어간 회사에서 막상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데이터 ‘분류’에 매진하고 있다면 어떨까. 신나게 분석한 결과를 들이밀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분명 깊게 파면 뭔가 나올 것 같아서 주장했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 거 필요 없어” 하고 가볍게 퉁 쳐버린다면 어떨까. 별다른 고민 없이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왔어요”라는 말로 모든 가능성을 흘려보낸다면 어떨까.


그럴 때 데이터 분석가들은 회사를 떠난다.


회사가 아무리 지금 나를 잘 대해줘도, 결국 내 실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조직 밖으로 나가야 할 때,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힘마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볼 때,

내가 별로 좋아하는 질문은 아니지만 매번 묻는 질문이 있다.


“이전 회사는 왜 그만두셨어요?”

그러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답한다.

“커리어가 될 것 같지는 않아서요.”


물론 그중에는 “사실은 연봉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지 못해서 그렇게 답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면, 내가 보기에도 참 답답했겠구나 싶은 경우가 많다.


분석가로 들어갔는데 분석다운 분석을 하지 못했다.
데이터를 보긴 했지만 의사결정과 연결되지 않았다.
결과를 냈지만 아무도 쓰지 않았다.
문제를 제기했지만 조직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느낀 것은 단순한 업무 불만이 아니다.

“이 회사에 계속 있으면 나는 성장하지 못하겠다.”는 감각이다.




데이터 분석가들은 회사에서의 어떤 업무가

커리어가 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걸까.


쓸 만한 데이터가 없어서일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 당연한 얘기니 일단 넘어가자.

데이터에 제대로 된 투자가 없어서일까. 그것도 맞다. 하지만 요즘 모든 회사가 사정이 어렵다고 하니, 이 또한 잠시 접어두자.


내가 생각하기에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데이터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는 것이다.

데이터에 대한 고민, 해석의 깊이, 그리고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조직 안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꼭 데이터팀 내부의 팀원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말하는 환경과 사람은 팀 밖에 있다. 팀원끼리만 잘 이야기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데이터팀 안에서 분석하고, 모델 만들고, 대시보드 만들고, 보고서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데이터가 단순히 특정 부서 안에서 처리되는 기술 업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회사 전반의 사업 전략이 되고, 의사결정의 중추가 되고, 미래 먹거리라고 말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부터 데이터는 데이터팀만의 일이 아니게 된다.


디자인도 그렇다. 회사가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디자인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디자이너를 단순히 “예쁘게 만들어주는 사람” 정도로 대한다면 디자이너는 지칠 것이다.


개발도 그렇다. 좋은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개발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만 바카라망한다면 개발자는 떠날 것이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미래 먹거리가 데이터라고 말한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data-driven decision making)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객을 이해해야 하고, 로그(log)를 봐야 하고, AI 시대에는 데이터가 자산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데이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는

데이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이때 분석가는 지친다.


디자인이 중요하다면 디자인을 제대로 평가하고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개발이 중요하다면 개발의 구조와 제약을 이해하는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데이터가 정말 중요하다면, 적어도 데이터를 매번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환경은 갖춰져 있어야 한다.


물론 분석가 역시 쉽게 설명할 바카라임이 있다.


분석 결과가 어떤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지, 어떤 리스크를 줄이고 어떤 기회를 만드는지, 조직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이론을 어려운 말로만 늘어놓고 “못 알아듣는 당신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태도는 좋은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설명 바카라임'과 '교육 바카라임'은 다르다. 분석 결과를 쉽게 설명하는 것과, 분석이라는 전문 영역 전체를 매번 처음부터 납득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쉽게 설명해봐”라는 말이 어느새 전문가 개인의 소통 역량 문제로만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쉽게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쉽게 설명한다는 말은 어려운 이론을 들이대지 말고 결과와 기대 효과를 대중의 언어로 치환하라는 뜻이지, 전문 영역의 복잡한 판단까지 모두 비전문가가 즉석에서 납득할 수 있게 풀어내라는 뜻은 아니다. (그 어떤 영역도 그렇게 쉽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분석가 자신도 잊을 만하면 다시 복습해야 하는

수많은 통계 이론, 실험 설계, 분석 기법, 모델링 방법론을

대체 어떻게 매번 대중적인 언어로 완전히 설명하겠는가.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설명할 때도 그랬다.

그는 회로 구조나 터치 인터페이스(interface, 접점)의 세부 구현 방식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전화기, 음악 플레이어, 인터넷 커뮤니케이터가 하나가 되었다는 사용자의 언어로 말했다.


쉽게 설명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전문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자가 이해해야 할 층위로 번역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조직은 이 지점을 놓친다.

분석으로 인해 얻게 될 결과에 집중하기보다, 분석 과정 자체에 과도하게 개입하려 한다.

분석가가 왜 이 방법을 썼는지, 왜 이 데이터를 제외했는지, 왜 이 변수(variable, 변수)를 선택했는지, 왜 이 결론이 나왔는지를 묻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질문의 목적이 '검증'이 아니라 '통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분석가는 분석해야 할 시간의 상당 부분을

분석을 이해시키고, 방어하고, 설득하는 데 사용하게 된다.

그것도 한두 번이면 괜찮다. 하지만 매번 그래야 한다면 분석가는 지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데이터라는 것이 그럴법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빅데이터(big data, 대규모 데이터)나 코딩(coding, 프로그래밍)은 낯설 수 있지만, 데이터라는 것 자체는 누구나 알고 있고 겪어본 개념이다. 매출 데이터, 고객 데이터, 설문 데이터, 광고 성과 데이터, 회원 수, 클릭 수, 구매 수. 형태는 달라도 우리는 모두 숫자와 자료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데이터는 누구나 평가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디자인도 비슷하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예쁜 것과 예쁘지 않은 것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게다가 우리는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는 말도 많이 가지고 있다.


칙칙하다.
애매하다.
톤앤매너가 안 맞는다.
요즘 느낌이 아니다.
뭔가 임팩트가 없다.


디자이너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아마 속이 답답할 것이다.


데이터도 그렇다.

다른 분야에서 쓰던 말을 그대로 가져와도 분석을 평가하는 말처럼 들린다.


뭔가 엣지가 없다.
인사이트(insight, 통찰)가 없다.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래서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좀 더 임팩트 있는 걸 가져와라.


우리도 열받는다.

문제는 이런 말들이 모두 틀렸다는 게 아니다. 실제로 분석 결과가 애매할 수도 있고, 인사이트가 부족할 수도 있다. 분석가가 비즈니스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피드백이 되려면 그 말 뒤에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지.
어떤 가정이 현실과 맞지 않는지.
어떤 고객군을 더 나눠봐야 하는지.
어떤 액션(action, 실행)으로 연결되기 어려운지.
어떤 지표가 사업의 핵심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지.

이런 대화가 가능해야 분석도 성장한다.


그런데 많은 조직에서는 “인사이트가 없다”는 말에서 대화가 끝난다.

“이런 거 말고 더 새로운 거 없어요?”라는 말에서 분석이 멈춘다.

“우리가 이미 아는 얘기잖아요”라는 말로 데이터를 닫아버린다.


그 순간 분석가는 깨닫는다.

이곳에서는 데이터를 깊게 다룰 수 없겠구나...


데이터는 요즘 핫한 키워드다. 유행이고, 모두가 궁금해하는 영역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관여하고 싶어 한다. 누구나 한마디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데이터 앞에서는 전문가에게 지고 싶지 않아 한다.


“나도 데이터 좀 봐봤어.”
“나도 숫자는 볼 줄 알아.”
“이 정도는 감으로도 알 수 있지 않나?”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봐야 해?”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말이 많아질수록, 데이터에 대한 개입도 많아진다.

하지만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말은, 모두가 분석 과정에 똑같이 개입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데이터가 중요할수록 역할이 분명해야 한다.


경영진은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회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의사결정이 필요한지, 어떤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지 정의해야 한다.


사업부서는 맥락을 제공해야 한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고객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숫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제약과 기회를 알려줘야 한다.


데이터 분석가는 방법론과 해석을 바카라임져야 한다.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떤 분석이 적절한지, 어느 정도까지 해석할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추정인지 구분해야 한다.


좋은 데이터 조직은 모두가 분석가처럼 말하는 조직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데이터와 연결되는 방식을 아는 조직이다.


모두가 SQL을 짜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통계를 깊게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데이터 분석가가 어떤 층위에서 고민하고 있는지, 분석 결과가 왜 단순한 숫자 나열이 아닌지, 좋은 분석이 나오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는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데이터 리터러시(Data Literacy, 데이터 문해력)다.

데이터 리터러시는 “데이터를 직접 분석할 수 있는 능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데이터를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믿고 어디서부터 조심해야 하는지 아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조직에 없으면 분석가는 계속 혼자 싸운다.


데이터를 뽑아야 하고, 정리해야 하고, 분석해야 하고, 시각화해야 하고, 보고해야 하고, 설득해야 하고, 다시 교육해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분석가인지, 사내 데이터 과외 선생님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분석가는 회사를 떠난다.


그들이 예민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인정받고 싶어서만도 아니다.
그들이 편한 일만 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자신이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데이터 분석가는 좋은 데이터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좋은 툴(tool, 도구)만으로도 성장하지 않는다. 연봉과 복지만으로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분석가는 좋은 질문이 있는 곳에서 성장한다.


데이터 분석가는 분석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곳에서 성장한다.
데이터에 대해 깊이 있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성장한다.


회사에서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면,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면, 분석을 단순한 보고서 생산으로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면, 분석가에게 매번 처음부터 모든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면, 조직 전체가 데이터를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분석가는 결국 그 언어가 있는 곳으로 옮겨 간다.

자신의 일이 커리어가 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그런 회사만이 데이터를 진짜 성장 동력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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