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크라상과 파리바게트의 빵이 맛있어서 이직을 한 베이글 매장. 집에서 딱 3분 거리 백화점 안에서, 1차로 갓 구워져 나오는 따끈한 베이글을 쇼케이스에 진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서 증명해야 하는 압박감, 그건 다른 무게더라.
이십 대 초반, 당시 매니저님이 해주셨던 조언이 귓가에 맴돈다. "좋아하는 마음이라도, 일과 나 사이에 건강한 거리감을 두어야 한다."
겉으로는 고소한 빵 냄새에 묻혀 평온해 보였지만 내 안에서는 알 수 없는 균열이 일고 있었나 보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이력서를 쓰고 있었다.
복잡한 고민들로 가득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에서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진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채 빗방울을 바라보며 머릿속을 가득 채운 혼란스러운 질문들을 하나로 겹쳐 보인다.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지원동기부터 성격의 장단점, 그리고 입사 후 포부까지. 자기소개서를 채워 나가기까지 두 시간째,
글을 쓰다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채널을 돌린다. 애니박스, 애니원, 투니버스… 채널을 계속 돌리다 보니 이상하게 자꾸만 '명탐정 코난'이 눈에 밟혔다.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 나가는 코난의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나도 풀지 못하는 내 인생의 복잡한 미스터리를, 코난은 늘 풀어내고 있다.
최근에 케이스티파이(CASETiFY)에서 연락이 왔다. 다만 내가 지원한 곳이 아닌 다른 지점으로 추천을 받았는데 그 제안 앞에서 고민은 깊어진다. 다른 결을 가진 브랜드인 '도제'와 '레고'의 면접을 연이어 보며 내 안의 고민은 더 복잡하다. 유부초밥 위 풍성한 토핑처럼 다채로운 F&B와 동심을 자극하는 장난감 블록이라니...
어느덧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매니저님의 말처럼 내 바카라임을 지킬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케이스티파이, 도제, 레고, 채워 내려간 이력서를 바라보고, 나는 내 인생의 다음 쇼케이스를 채워나가려고 한다.
이제는 다른 선택지들이 면접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나는 어떤 일을 해야 오래갈 수 있을까.
합격 통지서나 추천의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마음이 설레면서도 무거운 건, 내가 내 삶을 진지하게 바카라임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베이글 매장의 쇼케이스를 예쁘게 채우던 정성으로 나는 지금 내 인생의 다음 선택지를 진열해야 할지 고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