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누구인가. 이런 이야기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게 아니라 남으로부터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중요한 문제다 1분만에 알아보자.
먼저 문제가 많은 개가 있다고 치자. 그럼 그 개는 왜 문제가 많을까. 다 주인 때문이다. 개를 개답게 키우지 않아서다. 개가 뭔지 모르고 키우고 있기 때문에 사람처럼 키우다 망치고. 개를 물건처럼 여기다 망친다.
개를 모르고 키우는 주인의 비극이다. 그러나 정작 주인은 모른다. 개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더 야단치거나 더 응석을 받아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생이 감당이 되지 않는건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늘 불평불만만 늘 수 밖에 없다. 자신도 감당이 안되는데도 주변인들은 더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남이 좀 내 인생을 감당해주고 바꿔주면 좋을텐데 그런 사람이 어딨을까. 결국 부모탓 친구탓 남탓만 하며 세월을 보낸다. 자신은 달라지긴 힘들어도 남이 안바뀐 것에 모든 세월을 바친다.
그런데 자신을 알고자 하면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은 그럼 누굴까.
일단 나는 누구의 아들이고 어디 학교를 나오고 누구랑 결혼했으며 누구의 아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건 다 변동적이다. 만약 내가 그 학교를 안나왔다면 나는 내가 아닐까. 누군가의 아빠가 아니라면 아들이 아니라면 나는 내가 아닐까. 아니다. 난 그래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한다.
답은 이렇다.
나는 내 스스로 생각을 하는 사람 그 자체다. 내가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냥 남을 미워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행동을 한다면 나는 그정도 사람이다.
아무리 내가 어떤 스펙을 갖던. 내 직업이 어떻던. 내가 어떤 옷으로 가려도 결국 그게 나다.
생각과 행동이 나임에도 모두가 그걸 가릴 수 있을 줄 알고 온라인 게임과 스펙등 껍데기만 바꾼다. 차를 바꾼다. 그러나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자체다.
그러니 껍데기로 속이려 할 필요도 없고. 껍데기에 속을 필요도 없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남이 누구인지 알려면. 가장 약한이에 대한 생각. 약한 동물에게 하는 행동을 봐라. 그렇다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이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