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세계, 인공지능, 글쓰기

글쓰기 매체의 진화를 조망하기

by가이아

"매클루언의 인간의 확장은 언어 모델을 통과하여 확장 그 자체를 확장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미디어가 감각을 연장했다면, 언어 모델은 그 연장들을 서로 중첩하고, 번역하고, 교환 가능하게 만드는 확장 증강 매개로 작동합니다. 그런 면에서 거대 언어 모델은 ‘확장의 재구성과 재배치’, 나아가 ‘확장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동네 가을호(128호) 특집 <글쓰기 매체>에 "몸, 세계, 인공지능, 글쓰기: 글쓰기 매체의 진화를 조망하기"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인간의 글쓰기와 인공지능 매개 글쓰기의 차이를 '매체(medium)'라는 측면에서 조망한 글입니다. 출판 전 최종 교정본의 일부를 수정하여 공유해 봅니다.



모든 언어/개념을 모든 언어/개념으로 변환하는 온디맨드 언어 기계의 출현


이런 면에서 현재의 생성형 인공지능은 기존의 예술적, 실험적 시도와는 다른 차원의 ‘온디맨드 언어 기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온디맨드’는 사용자가 요구하는 산출물이 유용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세계에 대한 지식 없이 언어 데이터만을 가지고 통계적 분포에 따라 토큰을 뱉어낸다는 의미에서 ‘확률적 앵무새(stochastic parrot)’라고 부를 수도, 자신이 생성해내는 언어가 참인지 거짓인지 관심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헛소리 기계(bullshit machine)’라고 부를 수도, 의식과 감정, 이해를 수반하는 인간의 지능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응용 통계(applied statistics)’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의 맥락에서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인공지능이 쓸 만한 언어를 쉼 없이 내뿜고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현재의 거대 언어 모델을 ‘온디맨드 언어 기계’라고 부르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기존의 글쓰기가 세계와 몸의 인지 집합체를 통과한 언어 생성을 기본값으로 삼았다면, 텍스트를 생성하는 거대 언어 모델은 ‘텍스트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텍스트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현하는 기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매체의 측면에서 ‘텍스트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에는 텍스트는 물론 음성과 이미지, 비디오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특정한 알고리즘을 장착하는 경우 움직임이나 뇌파 등도 언어화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디지털화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모종의 알고리즘을 통해 언어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 이론상으로는 인간이 세계를 기록하고 이해하기 위해 발명한 모든 매체가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클루언의 인간의 확장은 언어 모델을 통과하여 확장 그 자체를 확장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미디어가 감각을 연장했다면, 언어 모델은 그 연장들을 서로 중첩하고, 번역하고, 교환 가능하게 만드는 확장 증강 매개로 작동합니다. 그런 면에서 거대 언어 모델은 ‘확장의 재구성과 재배치’, 나아가 ‘확장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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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글쓰기와 인공지능의 글쓰기가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는지를 친절히 안내해주는 김성우의 『몸, 세계, 인공지능, 글쓰기―글쓰기 매체의 진화를 조망하기』는 기억을 담지하고 기억을 변형시키며 기억에 따라 변화되는 몸이야말로 인간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매체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글쓰기에서는 달리 비언어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 사이를 역동적으로 오가며 수행되는 인간의 글쓰기가 그 결과물로 텍스트를 산출함과 동시에 필자 자신의 인간의 ‘변신’을 수반함을 강조한다." (서문 중에서)


문학동네 128호 - 2026.가을. <글쓰기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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