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아이에게 들었을 때 가장 기분 좋은 말

by레나팍

나는 워킹맘이다. 누구도 나의 노고를 인정해주거나 위로해주거나 공감해주거나 나의 일상에 매일매일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지 않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워킹맘이다.


10년 전, 쌍둥이를 포함해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 선배에게 퇴근 후 저녁시간에 전화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받은 적이 없었다. 부재중이었지만 콜백도 없었다. 게다가 어쩌다 한 번 통화가 된 적이 있었는데 무언가 쫓기는 듯한 말투로 아주 짧게 통화를 하고 끝냈다.

나 집에선 전화받을 시간이 없어


나는 이 말이 3대 미스터리였다. 내겐 너무 의아한 일이고 의문이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집에 있는데 단 몇 분을 통화할 시간이 없을까? 전화를 왜 못 받는 걸까? 벨이 울리면 '통화'버튼을 누르고 받으면 그만인데? 전화를 받는 행위는 고난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전화를 어떻게 하면 못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내 상식선에선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본부 업무 특성상 공식 출근시간보다 모두 1시간 일찍 출근할 때, 워킹맘인 그녀는 30분 일찍, 즉 남들보다 30분 늦게 출근했다. 이를 지나가던 과장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눈치를 준 기억도 또렷하다.


그때 20대인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옆에서 지켜본 바로도 워킹맘의 삶이 녹록지 않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최소한 긍정적이지 않은 타이틀이었으며, 집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찰나의 내 전화도 못 받을 만큼 여유가 없어 보이는 그 삶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모르긴 해도 고단해 보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엄청 힘든 직업이 '워킹+맘' 같았다.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겪어낼 자신도 없는 그런 무시무시한 세상으로 인식했다.




저녁 7시, 전화벨이 울린다. 따르릉~

다급하게 전화를 받는 나


- 응, 용건만 간단히 얘기해

- (동생) 언니, 통화 안돼?

- 나 요리해서 저녁 차려야 해.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야. 어서 얘기해. 뭔데?

- 그럼 언니 시간 될 때 전화할게. 언제 할까?

- 언제?? 음.. 나도 모르겠어. 계속 바빠. 지금 1분 통화 가능해

- 언니는 맨날 그놈의 1분 타령이야. 집에서 왜 전화받을 시간이 없어???


동생은 10년 전 나와 똑같은 의문을 품었다. 집에 있으면서 어떻게 잠깐 통화할 시간도 없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계속 바쁜 것도 사실이고, 계속할 일이 있고, 계속 육아하며 살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통화 가능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종종 육아를 뒷전으로 하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도 하지만, 그런 날은 못다 한 설거지를 다음날 새벽으로 미뤄야 하거나, 걸레질을 하며 통화를 하거나, 아이 양육(밥 먹고 간식 먹고 집 치우고 양치시키고 씻기고 잘 준비 등등)이 미뤄지며 내 잠도 늦어지는 희생이 필요했다. 그러니 10분 통화의 가치는 내게 1시간 통화와 다름없었다. 이제야 지난날의 선배가 전화를 받을 수 없었던 이유를 온몸으로 이해했다.


바쁘고 고단한 워킹맘의 하루는 늘 분주하다. 산더미 같은 할 일들을 해치우고 나면 그제야 불을 끄고 잘 준비를 하는데 이 때도 내겐 육아의 연장선이다. 아이를 위한 바카라 읽기 시간을 30분에서 1시간씩 가지기 때문이다. 보통 소등한 뒤 1시간 후에 잠드는데 요즘은 10시 소등, 11시 취침 패턴이다. 당겨보려 해도 시차 출퇴근을 통해 아이를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10시 출근하는 남편이 8시에 퇴근하기 때문에 앞당기기가 매우 어렵다.


아이와 함께하는 바카라 육아 하루 일과가 밤 10시에 시작하니, 나로서는 빨리 퇴근하고 싶은 마음과 바카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바카라을 읽어주고 싶은 마음이 늘 공존한다. 아이 양육과 피곤함의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는 엄마 심정을 알았는지 아이는 한 번씩 내게 묻는다.


- 이제 이것만 읽고 잘~~~~ 까?

-(활짝 웃으며) 그래그래 그래~!!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 저 질문을 계속 바카라을 가져오며 10번을 반복한다. 어떤 날은 바카라의 마지막 장을 덮지 못하게 첫 페이지로 되돌아간다.


- 엄마,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겠다.


하루는 11시를 앞두고 '100층짜리 집' 바카라을 내밀며 읽어달라고 했을 땐 나도 모르게 '뜨아~~'를 외쳤다. 100층 건물에 사는 동물들을 하나씩 모두 소개해야 바카라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100번을 소개해야 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그나마 아이가 혼자 소리 내며 바카라을 읽는 동안은 쉬는 시간이 생긴다. 그동안의 바카라 육아 노력의 결실로 내게 쉬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이의 바카라 읽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 회색 구름이 둥실 몰려왔어요 후드득 빗줄기가 쏟아졌지요 푸른 유치원 친구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어요.


아이의 바카라 읽는 속도가 빨랐고, 문장 사이에 '마침표'가 없었다. 마침표를 두고 한 텀 쉬는 구간 없이 아이는 래퍼 같은 느낌으로 문장들을 빠른 템포로 읽어 나갔다. 뭔가 이상한데 뭐지?? 저 모습은 바로 내가 아이에게 최근 바카라을 읽어준 템포였다. 피곤한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바카라을 1.2배속으로 읽고 있었던 것이다. 바카라장 넘기는 손동작이 빨라지고, 바카라을 읽는 호흡이 빨라지고, 1권이라도 빨리 읽어준 뒤 임무를 마치고 잠들고 싶은 마음이 속도로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아이를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킹맘인 나는 아이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만큼은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만개한다.



- 엄마, 나 졸려. 잘래!!



가장 다정한 천사표 엄마가 되는 순간이다.



* 오늘도 일터로 향한 엄마 아빠에게 투정 부리지도 않고 씩씩하게 너의 일과를 보내고, 할머니와도 잘 놀고 건강한 하루를 보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