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 목표인가요?

by정물루

20세기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조지아 오키프. 그녀가 결국 선택한 건 갤러리도, 비평가도, 카메라도 없는 뉴멕시코 사막 끝자락이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만큼 먼 곳. 그게 좋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Georgia O'keeffe: The Brightness of Light의 리뷰를 봤다. 과장없이 2시간 동안 오키프의 삶을 따라간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오키프, 그러니까 꽃, 두개골, 사막 풍경으로 대표되는 이미지 뒤에 있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오키프는 평생 누군가의 시선과 싸워야 했다. 연인이자 남편이었던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그녀의 누드 사진을 전시했고, 그것은 오키프가 원했던 방식의 유명세가 아니었다. 비평가들은 그녀의 꽃 그림을 여성의 신체에 대한 은유로 해석했지만, 그것 역시 그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뉴욕의 마천루를 그리고 싶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티글리츠는 그것이 남성 작가들의 영역이라고 여겼지만, 오키프는 결국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다.


기사 속에서 특히 눈길이 갔던 것은 텍사스 시절의 누드 수채화 자화상 연작이었다. 비교적 덜 알려진 초기 작업인데, 분홍빛 색조 속에서 몸의 형태가 마치 풍경처럼 흐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확인하기 위한 행위에 가까워 보였다. 어쩌면 오키프에게 몸과 땅은 처음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1946년 스티글리츠가 세상을 떠난 뒤 오키프는 몇 년 동안 붓을 놓는다. 그리고 다시 뉴멕시코로 향한다. 그곳에서 98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작업을 이어갔다. 동물의 두개골, 꽃, 구름, 고원. 심지어 옷도 사막의 색에 맞춰 직접 만들어 입으며 풍경과 자신의 경계를 서서히 지워갔다. 남들의 시선과 해석을 걷어내고 오직 자기 눈에 끌리는 것만 바라보겠다는 선택이었을까.


우연한 기회에 이 먼 두바이에서 한국 채색화, 민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혼자 전통 회화 속 꽃과 나무, 새와 나비를 들여다보며 왜 그렸는지, 어떻게 그렸는지 찾아보고 따라 그리는 시간에 놀랄 만큼 깊이 몰입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사람들이 남긴 그림을 따라 색을 만들고 선을 긋고 색을 채우다 보면 현실 속 복잡한 시선들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기분이 든다. 어디선가 치유받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 있다.


예술이 직업이 되면 잊기 쉬운 것이 있다. 원래 예술은 나를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오키프가 사막 끝으로 향한 이유도 결국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유명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리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


아무 목적 없이 글을 쓰고, 무언가를 만들어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나요?


Image: Hyperallergic




https://hyperallergic.com/georgia-okeeffe-the-wand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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