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헤지펀더: 돈 앞의 야만인 홀로서기 렌 7

<고독한 렌이 바라보는 미국 뉴욕 월가의 금융역사의 한 스토리>

by새하얀흑장미 알랭들롱 렌

<고독한 렌이 바라보는 미국 뉴욕 월가의 금융역사의 한 스토리>

오늘도 연이어진 렌의 꿈속 하나이다.

19세기 초의 어느 겨울 새벽, 안개가 짙게 깔린 항구 도시 New York City의 남쪽 끝에는 아직 세계를 지배하지 못한 작은 거리 하나가 있었다. 그 거리는 훗날 인간의 탐욕과 공포, 천재성과 광기, 그리고 자본주의의 심장을 상징하게 되는 이름을 갖게 된다.

바로 월가(Wall Street)였다.


처음 그곳에는 거대한 금융 제국도, 유리 마천루도 없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상인들은 식민지를 방어하기 위해 나무 장벽 하나를 세웠고, 사람들은 그 벽 곁의 길을 “월 스트리트”라고 불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벽은 외부를 막기 위한 것이었으나 훗날 월가는 오히려 세계 모든 돈이 흘러드는 문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미국은 독립했고, 젊은 공화국은 자본을 필요로 했다. 상인들과 채권 중개인들은 버튼우드 나무 아래 모여 거래를 시작했다. 1792년, 그들은 작은 협정을 맺는다.


훗날 New York Stock Exchange의 시작이 되는 버튼우드 협정이었다. 그날의 사람들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작은 계약서가 수 세기 뒤 인류의 부와 권력을 재편할 것이라는 사실을.

19세기 후반으로 가자.

철도는 미국 대륙을 관통했고, 산업혁명은 도시들을 불태우듯 성장시켰다. 그 시절 월가는 단순한 거래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미래를 사고파는 장소였다.


철도왕, 석유왕, 철강왕들이 등장했다. John D. Rockefeller는 석유를 지배했고, Andrew Carnegie는 철강으로 제국을 세웠으며, J. P. Morgan는 돈의 흐름 자체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특히 J.P. 모건은 단순한 은행가가 아니었다. 그는 혼란한 자본주의의 조율자였다. 1907년 금융 공황이 터졌을 때, 미국에는 아직 중앙은행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은행 앞에서 돈을 찾으려 줄을 섰고, 금융 시스템은 붕괴 직전이었다. 그때 모건은 자신의 집 도서관에 당대 최고의 미국 금융가들을 강제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거의 강압적으로 자금을 모아 시장을 구해냈다.


그 밤, 미국은 깨달았다.

“국가보다 더 강한 금융 권력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 충격 끝에 탄생한 것이 훗날의 Federal Reserve System이었다.

그러나 월가는 늘 영광만의 장소는 아니었다.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시대를 맞이한다. 재즈 음악이 울리고, 자동차가 거리를 채우고, 사람들은 영원한 번영을 믿었다. 구두닦이 소년조차 주식을 이야기했다.

“내일은 더 오를 거예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주식을 샀다. 월가는 마치 끝없는 황금의 계단처럼 보였다.

그리고 1929년. 검은 목요일이 찾아왔다.


주가는 무너졌고, 비명 같은 전화벨이 거래소를 뒤덮었다.
하루아침에 수많은 부호가 파산했다.
어떤 이는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고, 어떤 이는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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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적 극미남 알랭들롱처럼 화려하면서도 슬픈 이야기입니다. 神(God)이 점지한 뭇여성들의 연인이었으나 시궁창에 홀로 핀 흑장미 마냥 빛도 없이 차가운 여명으로만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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