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객(老客)을 위한 파이크 증후군의 교훈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벽과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눈에 보이는 벽은 언젠가 무너진다. 제도는 바뀌고, 시대는 흐르며, 권력도 교체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은 오래 남는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세워진 벽이다.
오랫동안 낮은 신분 속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가난이나 불리한 조건이 아니다. 진짜 짐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새겨진 체념의 벽이다.
파이크라는 물고기의 이야기가 있다. 투명한 유리벽 때문에 먹이를 잡지 못하던 파이크는 여러 번 부딪힌 끝에 결국 포기한다. 시간이 지나 유리벽이 사라져도 그는 더 이상 먹이를 향해 돌진하지 않는다. 벽은 사라졌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벽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낮은 자리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세상을 향해 몸을 던진다. 그러나 반복된 거절과 무시, 좌절을 겪으며 마음속에 불침(不沈)의 문장이 자리 잡는다.
“이곳은 내 자리가 아니다.”
이 문장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삶의 규칙이 된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허락한 만큼만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노년의 문턱에 서서 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 깨닫는 것이 크게 하나 있다. 세상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지만, 동시에 생각보다 훨씬 더 느슨하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많은 장벽은 실제의 힘보다 사람들의 믿음으로 유지된다.
오랫동안 낮은 신분 속에 머물렀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도, 야망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마음속 유리벽을 의심하는 태도이다.
노객에게는 젊은이와 다른 장점이 있다. 젊은이는 힘이 있지만 세계를 모른다. 그러나 노객은 세상을 오래 보았고 인간의 허영과 권력의 허약함을 알고 있다. 많은 권위가 사실은 허상이며, 많은 문이 실제로는 잠겨 있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노객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는 신분으로 인하여 자신이 스스로 세워 두었던 한계를 지워 보는 일이다. 사람은 때로 늦은 나이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타인의 시선도, 오래된 규칙도, 체면도 조금씩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그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작은 실천이다.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높은 인격으로 걸어가 보고, 조금 더 넓은 세계를 인지해 보는 것.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예전에는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선이 사실은 누구도 그어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파이크가 굶어 죽은 이유는 먹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게도 같은 운명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물고기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인간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생각을 의심할 수 있다.
그래서 노객에게 남은 마지막 철학은 이것이다.
"늦은 나이에도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몸을 기울여 보는 것. 어쩌면 신분의 벽이란 처음부터 돌로 쌓인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래도록 믿어 온 허상(虛想)의 유리벽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