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하숙집에는 성문화되지 않은 철칙이 하나 있다. '정희 씨가 주는 대로 먹을 것'. 하지만 간혹 이 철칙을 망각하고 간덩이가 부은 용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새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서울 명문대생이라며 은근히 콧대가 높던 3번 방 '안경 총각'이 타깃이었다.
"아지매, 오늘 또 미역줄기무침이에요? 저 이거 비려서 잘 못 먹는데... 소시지나 계란말이 같은 건 없어요?"
식탁에 찬바람이 쌩 불었다. 숟가락질하던 미나와 나는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안경 총각을 쳐다봤다. '저 사람, 오늘 제삿날인가?' 하는 눈빛으로.
부엌 안쪽에서 설거지를 하던 정희 씨의 손길이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더니, 앞치마에 손을 쓱쓱 닦고 식탁으로 걸어 나왔다.
"뭐라카노? 미역줄기가 비리다고? 소시지? 계란말이?"
정희 씨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조용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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