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작은 다정이 꺼져가는 무언가를 살리기도 한다.
"어머, 어디 아프세요?"
힘겹게 출근한 아침 데스크에서 나를 본 이용자가 말했다.
남편은 출근길에 얼굴을 볼 수도 없어 못 봤지만, 출근한 이후에 마주친 사람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도 내가 아픈걸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용자가 알아보고 어디가 아프냐고 살갑게 물어왔다.
"하하하. 아니요. 괜찮습니다."
웃으면서 모면해보려고 했는데, 갸웃 거리며 이용자는 싱긋 웃으며 가셨다.
주말에 무리했는지 인후염이 올라오고 열이 올라있었다. 또 생리도 시작되어 생리통에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 같은 몸살끼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용자가 그렇게 묻고 가니 같이 일하던 직원이 그러고 보니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또 '괜찮다.' 하며 웃었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아까 나의 안부를 묻던 이용자가 따뜻한 유자쌍화차를 내밀었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힘내세요." 하며 쥐어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 도서관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이걸 사러 저 아래까지 서둘러 다녀오신 것 같았다. 따뜻한 온기가 여전한 걸 보니 일부러 다녀오신 듯했다.
요 며칠 이용자들의 민원에 힘들었다. 춥다고 민원이 들어와서 난방기를 틀면 건조하다고 에너지 절약을 하지 않는다고 민원이 들어오고, 데스크에서 업무상 이야기를 나누어도 사서들이 웃으며 사담을 한다고 민원이 들어왔다. 열람실 안에서 양치하는 사람이 있다고 민원이 들어오고 해당이용자에게 화장실에서 해달라 부탁하면 욕을 들었다. 또 어떤 이용자는 PC를 이용하다가 종종 욕이나 명령조로 소리쳤다. 옆 사람과 시비가 붙으면 말리려 다녀야 했다. 시비를 말리다 던지는 물병을 막아서고 흥분한 이용자의 침세례를 대신 받기도 했다. 종종 찾아오는 노숙자의 악취로 민원이 들어와 탈취제를 뿌리면 폐섬유종이 있는 어르신 이용자가 도서관에 탈취제를 많이 뿌린다며 민원을 넣었다. 이 모든 이용자들은 거의 매일매일 도서관을 찾았고 매일 마주해야 했다. 민원에 민원이 더해져 사람을 대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개인적으로 사서는 사람을 좋아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게 힘들어지면서 고민이 많이 되었다. 이제 사서로서 마음가짐이 다 사그라들었나 보다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더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게 이용자들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웃으면서 이용자를 응대하는 게 점점 가식적으로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기 자신을 검열하게 되었다. 친절하기 어려워지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내 손에 쥐어진 따뜻한 유자쌍화차 한 병이 다시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었다. 별거 아닐 수 없는 온기였다. 화나지 않은 이용자와 대화하는 것이 오랜만인 듯했다.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만 모든 이용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공공의 영역이기에 다수의 편의를 위해 소수가 불편을 겪을 수 있고 불편을 겪은 소수를 설득하고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다 화살이 되어 날아오면 온몸으로 막아보지만 결국은 그 자리가 곪고 아프다. 내 집이면 기꺼이 내어줄 수 있지만 공공의 영역이기에 모두에게 줄 수 있지 않으면 내어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규정이 있고 지침이 있다. 규정과 지침을 어기고 이용자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당장은 편할 수 있었도 결국은 화살이 더 큰 칼이 되어 돌아온다.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버텨내야 하는 시간들이 마음속에 쌓인다.
19년 차 실무를 보고 있는 사서지만 민원은 여전히 어렵다. 실무를 조금 더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용자와 만나고 그들이 웃는 게 좋아서 내가 기획한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며 즐거워하는 현장에 있고 싶었다. 승진 TO가 없는 조직에서 실무를 하는 거에 대해 불만도 없었다. 요즘은 이게 문제였나 싶다. 관리자가 되어야 할 때 아직도 데스크에 앉아서 실무를 보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정도로 내 정신이 망가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회복탄력성이 무너져버렸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번아웃- 에너지가 없어 작은 자극에서 쉽게 무너져 내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복잡한 생각들로 고통스러울 때 작은 손길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때로는 작은 다정이 꺼져가는 무언가를 다시 살리기도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