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가볍게, 오빠. 가볍게.
광화문 교보문고 빌딩 16층.
출판사 [온리북하우스]의 로비는 하주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조용하고, 더 서늘했다. 회색빛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벽에는 그가 지난 일 년간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베스트셀러들이 액자 속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그 사이 비어 있는 액자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익숙한 제목들이 낯선 위압감으로 어깨를 눌렀다. 로비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원목 테이블 위에는 아직 잉크 냄새도 가시지 않은 신간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종이와 커피, 그리고 지성이 뒤섞인 낯선 향기가 그의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임하주 작가님, 이쪽으로 오시죠."
단정한 단발머리의 편집장이 회의실 문을 열며 그를 안내했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아직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다. 통유리로 된 회의실 벽 너머로 경복궁의 고즈넉한 기와지붕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출근 전 중고서점 구석에서 그려보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그 풍경을 등지고 앉은 마케팅 팀장의 눈은 날카로웠지만,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하주가 보낸 원고 뭉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작가님 글, 저희 팀원들이 모두 돌려 읽었습니다. 다들 비슷한 말을 하더군요. '마치 내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았다'고요."
그녀의 표정은 칭찬인지 평가인지 모호했지만, 하주는 그 말의 무게를 알 수 있었다. 그의 가장 사적인 기록이, 이제 세상과 소통할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려 하고 있었다.
"저희는 이 글이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임하주'들의 목소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확신'이라는 단어 앞에서, 수없이 흔들리고 주저앉았던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동료들의 비난과 번아웃에 숨 막혔던 응급실의 공기. 이천만 원이 사라졌던 통장 잔고. 수상자 명단 속에서 끝내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했던 모니터의 차가운 빛까지. 드디어 이번 확신은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내내, 하주는 창밖의 기와지붕보다 로비에서 본 그 빈 액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언젠가 자신의 바카라이 걸릴지도 모를, 바로 그 자리를.
일 년 뒤, 그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변했다.
쉬는 날 익숙한 발걸음이 그를 교보문고로 이끌었다. 자동문이 열리자 코끝으로 익숙한 향기가 다가왔다. 나뭇결이 살아 있는 바카라과 바카라장들, 종이 냄새가 은은하게 감도는 공기. 숲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았다. 몇 년 전, 커피 원두를 사러 나섰다가 이 향기에 이끌려 처음 서점에 들어섰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하주는 이렇게 홀린 듯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멈춰 섰다. 입구에서 가장 잘 보이는 바카라장. 환한 조명 아래, 너무나도 익숙한 표지의 바카라이 놓여 있었다. 하주는 순간 숨을 멈췄다.
'잘못 본 거겠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심장이 귀에서 뛰었다. 정말, 자신의 바카라이었다.
[누군가 내 일기를 훔쳐보면 좋겠어-임하주]
바카라장 위에는 노란 조명 아래 빨간 글씨로 '베스트셀러'라는 문구가 빛나고 있었다. 하주는 조심스럽게 바카라 표지에 손을 댔다. 바카라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자신이 쏟아부은 문장들이 온기를 품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치며 데워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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