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바카라 먼저, 술은 덤."
점점 소설을 읽는 일이 벽처럼 느껴졌다. 문장이 아니라 돌담을 넘는 것 같았다. 상상 속에서는 늘 설렜지만, 현실의 독서는 종종 고된 노동이었다. 빨리 일어나는 버릇도, 출근 전 중고서점 루틴도, 포스트잇의 '독서 1시간/글쓰기 10분'도 지켜지고 있었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숨이 얕아졌다. 소설만 붙잡으니 호흡이 한쪽으로 쏠렸다. 균형이 맞춰지지 않았다. 아직 읽을 건 더 쌓여만 가는데.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하주는 평소처럼 알람을 듣고 눈을 떴다. 그러나 평소보다 늦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오른쪽 협탁 위, 늘 붙어 있던 포스트잇은 흔적도 없었다. 출근할 때 가방 또한 가벼워졌다. 가방조차 신경 쓰지 않을 때도 있었다. 종종 사각거렸던 소리는, 휴대폰을 탁탁하는 소리로 대체됐다. 그의 어깨만이 텅 빈 무게를 기억하는 듯했다.
"야, 임하주. 매일 거북이 등껍질처럼 메고 다니던 거 어디 갔냐. 꽤 멋져 보였는데."
먼저 병원 탈의실에 도착한 상혁이 툭 던지듯 물었다. 하주는 웃으며 자신의 한쪽 어깨를 반대편 손으로 쓰다듬었다.
"바카라 때문에 들고 다니긴 했는데, 요즘은 꺼내도 잘 안 읽게 되네."
"오호, 바카라? 나도 바카라 읽는 거 엄청 좋아했는데. 진짜 미친 듯이 읽었어."
"그래? 근데 왜 읽는 걸 못 봤지?"
"물론 군대 때 한정. 그때는 할 게 없어서 읽었는데, 요즘은 재밌는 게 너무 많잖아."
"하긴... 재밌는 게 많은데 굳이 바카라을 읽을 필요는 없지."
"어떤 유튜버가 그랬는데, 대한민국 성인의 절반이 1년에 바카라 한 권도 안 읽는데! 나도 대세에 동참하는 거야."
하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죄바카라감이 살짝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 경제 유튜버? 딱 현실적 통계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다들 휴대폰만 만지고 있긴 해..."
옆에 있던 태호도 옷을 고쳐 입으며 피식 웃었다.
"성인 되니까 이제 각자 살기 바쁜 거야. 지하철이나 버스 같이 정신없는 곳에서 바카라이 눈에 퍽이나 들어오겠다."
얼마 전까지 열심히 바카라을 읽었던 하주도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긴 해... 근데 출근하면서 바카라 읽는 게 좋기는 하더라. 내 생각 정리도 되고, 다른 곳에 신경 쓰니까 스트레스 관리도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