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없는 여름방학

by박모씨

나는 어렸을 때 가족끼리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만한 형편도 안되었고, 아빠는 하루 종일 술만 드셨으니까. 바닷가 지천에 살면서 해수욕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래서 여름방학이 싫었다. 겨울방학도 싫었고. 다른 친구들처럼 여름방학에 학원을 가냐? 어학연수를 가냐?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방학이 되면 술에 취해서 언제 어디서 날 때릴지 모르는 아빠랑 같이 하루 종일 있어야만 했다. 차라리 학원에 갔으면 덜 곤욕스러웠을 텐데. 학교에 갔다면 밥 걱정은 하지 않았을 텐데. 없는 형편에 냉난방도 틀기 힘들었기 때문에 방학은 지옥 그 자체였다.


어디 놀러 가자는 말을 어렸을 때나 했지,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우리 집은 한 끼 밥 해먹기도 힘든 형편인걸 알게 된 후로는 그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그런 게 안 되는 거니까, 포기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턴 아르바이트를 5~6개씩 했다. 꼭 사야만 했던 전공 서적들이 꽤 비쌌다. 한 학기에 100만 원은 바카라값으로 써야 했으니까. 그러고 남는 돈으로 한 번 두 번, 해외여행을 가봤다. 그런데 이런 것도 가본 사람들이나 잘 가지, 무일푼에 옷가지조차 변변치 않은 나에겐 정말 힘든 일이었다. 신발 밑창이 떨어지기도 하고, 수화물로 부친 캐리어가 늦게 도착해서 3일 내내 같은 옷을 입고 있었던 일도 있었다. 돈 한 푼 두 푼에 전전긍긍하는 나 때문에 친구들도 많이 없어졌다.


자연스럽게 나는 집이 제일 좋아졌다. 내가 내 돈을 주고 머무르는 나만의 공간이 좋았다. 어차피 휴가, 여행이라는 건 돌아오는 집이 있을 때 가장 좋은 거니까. 나는 훌쩍 떠난 낯선 타지보다는 익숙한 곳이 좋았다.


그랬던 내가 휴가를 즐기기 시작한 건 남편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다른 건 몰라도 여름휴가는 꼭 갔으면 좋겠다는 말에 여름에는 3박 4일 정도 휴가를 내고 어디론가 다녀왔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간질간질하게 부산도 다녀와봤고, 함께 제주도도 다녀왔다.


거기에다 남편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 슬롯생활을 본격적으로 잘 헤쳐나가기 시작해서 개인적인 형편도 괜찮아졌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아주 적긴 하지만 -신발 밑창이 떨어지면 신발을 새로 살 수 있게 됐다 - 더울 땐 시원하게, 추울 땐 따뜻하게 입을수 있는 옷가지가 생겼다.


휴가에선 다양한 걸 경험하곤 했다. 새로운 음식도 먹어보고, 새로운 풍경을 보기도 했다. 거창한 해외여행이 아니어도 좋아하는 사람과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점점 매년 가는 짧은 여름휴가가 기대됐다.


이번 여름휴가는 날씨가 흐렸다. 남편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어딜 막 즐겁게 쏘다니는 느낌도 아니었다. 제주도의 어느 커피숍에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두통때문에 끊었던 커피를 오랜만에 조금씩 마시면서 남편이랑 푸르른 귤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단한 풍경도 아니었고, 커피 맛이 아주 좋았던 것도 아니었고, 날씨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남편은 나즈막히 나에게 '정말 좋다! 사랑해. 다음에도 또 오자.' 라고 했다. 우리는 감귤밭을 쏘다니던 제비들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봤다.


어른이 되고나서 나는 엄마 아빠의 사정을 좀 더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내가 섭섭했던 것들, 아쉬웠던 것들, 그들도 아쉬웠으리라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했던건 유명한 관광지나, 멋진 숙소, 즐거운 놀이 이런것들이 아니었다. 나를 챙겨주는 마음, 좋은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사랑한다는 마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휴가를 다녀오는 햇수가 늘어갈수록, 나에게는 없었던 여름방학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우리는 왜 그렇게 가난했어야만 했을까. 우리는 왜 그렇게 여유가 없었어야만 했을까. 잠깐 놀러 나오는거 정말 별거 아닌데.


나는 올해도 기쁜 마음으로 방학을 보내지 못했던 어렸을 적 나에게 예쁜 풍경과 내가 아주 사랑하는 사람을 소개해줬다. 그땐 슬펐겠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말해줄수 있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부모님의 모든 선택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았던 것을 내 삶에서 되풀이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