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줘’ 한마디면 글이 나오는 AI시대의 글쓰기

by경욱
'써줘' 한마디면 나오는 글, 왜 그 글은 읽고 싶지 않을까?

AI덕분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쉬워졌다. 별다른 생각 할 필요도 없이 '써줘' 한마디면 그럴싸한 글을 주르륵 써주니까. 하지만 막상 AI가 뱉어준 글을 읽어보면 매력이 없다. 글의 키워드나 주제는 본인에게서 나왔을지 몰라도 구성, 문체 등 AI가 뱉는 글은 괜찮긴 하나 시간 들여 읽고 싶지는 않은 그저 AI의 글이다. 진정으로 AI slop의 시대다. 숏폼에서도, 온라인카지노에서도 감동도 없고, 굳이 계속 읽고 싶지도 않은 콘텐츠가 난무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지우개로 지워가며 글을 쓰자는 건 아니다. 분명 AI에게 '써줘'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더 적절하게 사용할 방법도 분명 있지는 않을까. AI slop을 찍어내는 것 아니라 나만의 글을 쓸 때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글'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읽는다

AI시대에 '읽을만한 글'이 되려면, 그 글은 굳이 시간을 들여서라도 읽을 '좋은 글'이어야 한다. 좋은 글이란 콘텐츠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작가의 삶과 관점이 들어가 있는 Real voice가 듬뿍 담긴 글이다. 삶과 관점은 단순히 어떤 주제에 대한 한 의견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


사람들이 양산형 쇼츠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나와서 직접 말하는 영상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단편적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AI는 80점은 빠르고 쉽게 주지만, 나머지 20점을 채우지 못한다.


물론 작가의 관점이 들어가 있다고 해서 모두 좋은 글은 아니다. 세상에는 관점만 담긴 별로인 글도 많다. 하지만 그런 별로인 글들 중에서 좋은 글이 탄생한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결국 대체불가능한 real voice다. 자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분명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


AI와 싸우는 건 답이 아니다. AI와 같이 써보자

작가가 듬뿍 담겨야 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AI가 3초 만에 만들어준 그림보다 어린아이가 3시간 동안 그린 그림에서 더 큰 감동을 받는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제 인간과 AI의 대결이 아니라는 명제는 판단이 끝났다. 지금부터는 AI를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AI를 어떻게 잘 쓰느냐의 문제가 됐다. 글로 한정해 본다면 내가 썼다고 믿으며 그저 그런 또 다른 AI slop 글을 발행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AI와 함께 이전보다 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인가의 문제가 됐다.


앞서 좋은 글은 '작가의 삶과 관점이 듬뿍 담긴 글'이라고 정의를 내렸으니 이제 우리는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을 북극성으로 잡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AI를 어떻게 활용할까에 집중한다. 아래는 내가 써보며 가능성을 느낀 방법일 뿐 아래를 참고해서 각자의 방법론을 더 심화시키면 좋겠다. 혹은 댓글로 각자의 방법을 공유해 주시면 더 좋겠다.


1. AI에게 '글'을 쓰게 하지 말고 '생각'을 상대하게 한다

AI는 글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도와줄 수 있다. 나는 그동안 글을 쓸 때 나 스스로와 대화를 많이 했다. 주장하고, 반론하고 또 반박하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데 이 방식은 나의 생각과 경험에서 벗어날 수 없어 한계를 느낄 때가 있었다.


이제는 AI에게 처음부터 글을 써달라고 하기보다 아직 여물지 않은 생각을 함께 다듬어 보자고 말한다.


"그건 왜 그렇게 생각해?"

"잠깐, 그 두 개는 다른 문제 아닌가?"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어렴풋했던. 물론 AI가 던지는 질문과 답변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AI와 이야기하며 내가 혼자 생각할 때보다 훨씬 많은 방향으로 생각을 뻗어볼 수 있다.


2. AI의 가장 강력한 역할은 짜증 내지 않는 '반론자'다

AI는 나의 글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나는 가끔 '나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내 글을 review 한다면 어디가 부족할까를 생각하며 글을 쓸 때가 있다. 어느 정도 생각이 구조화 됐다면, 그 구조와 논리 그리고 여러 사례를 가지고 AI에게 말을 한다.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공격해 봐"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반대쪽 관점을 이야기해 줘"라고 요청하면 날선비판들이 날아온다.


물론 모든 반론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는 AI가 나의 글을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처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바뀌거나 더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생각은 더 단단해지고, 어떤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이 나오기도 한다. AI가 내 글을 오해했다면 왜 오해했는지 생각해 보며 빠진 부분은 없는지 점검해 본다.


3. 마지막에 AI를 '냉정한 편집자'로 사용한다

작가에게는 큰 두 가지 허들이 있다. 바로 '자아도취'와 '자기 검열'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날은 '글쓰기의 신'이 접신한 것과 같이 미친 듯이 글이 나오고 강력한 만족감과 자아도취가 오곤 한다. 또 어느 날은 혹독하게 이게 맞는 건지 빈틈은 없는지 끊임없이 묻는 자기 검열의 시간이 오기도 한다.


유능한 작가들의 곁에는 유능한 편집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의 티키타카를 통해 우리는 훌륭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유능한 편집자가 작가와 이 두 허들을 함께 넘으며 작품을 완성해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에게도 그런 편집자가 생겼다.


"논리적으로 비약한 부분이 있으면 알려줘"

혹은 "내가 지금 너무 완벽하게 쓰려고 하는 것 같다면 말해줘."


다만, 그 지적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너무 AI를 신뢰하면 안 되며, 모든 판단은 내가 내려야 한다. 때로는 굉장히 합리적인 지적일 수 있으나, 그 지적을 수용하면 글맛이 사라지고 맹숭맹숭하지는 글이 되기도 한다. 이 글이 어떤 글이 될지는 항상 작가의 손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절대 도와주지 못하는 '글맛'

아무리 AI에 내 글을 많이 학습시켜도 계속해서 한계를 느끼는 부분은 바로 구조와 문체에서 오는 매력 혹은 '글맛'이었다. 구조와 문체 이 둘만큼은 AI에게 아웃소싱하지 말고, 직접 해내자.


AI는 선호하는 구조가 분명히 있고, 매번 이 구조가 반복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글의 구조가 엉성하다. 그래서 AI가 쓴 글은 굉장한 피로감을 주며 AI가 쓴 글인 티가 굉장히 많이 난다. 좋은 구조를 짜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이 읽고 많이 써봐야 한다. 어떤 구조가 매력적인지, 어떤 구조여야 설득력이 있는지 직접 체득해야 매력 있는 글쓰기가 가능하다.


문체 또한 아무리 학습해도 극복이 어려웠다. AI에게 '써줘' 한 뒤 표현 조금 수정해 봐야 큰 틀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살짝만 바꾼 AI가 쓴 글인 게 티가 난다. 천편일률적인 TTS가 아니라 사람마다 고유의 어투에서 매력이 나오는 것처럼, 매력적인 문체에 있어서 가장 좋은 건 말하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다듬고, 질문하고, 반박하고, 독자의 반응을 예상하는 작업은 AI와 함께 할 수 있다. 하지만, 초안 '써줘', 내 어투에 맞게 다듬어서 '써줘', 알고리즘에 탈 수 있게 후킹 하게 '써줘'라고 해봐야 매번 AI가 쓴 글만 나온다. AI는 손과 발로 써야지, 가슴과 머리로 쓰려고 하면 뭔가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AI가 글을 대신 써줄 수 있는데도 왜 굳이 글을 쓰냐고?

AI가 글을 대신 써줄 수 있는데도 내 매력이 담긴 글을 굳이 써야 하는 이유는 결국 그 과정에서 '나다움'이 가장 선명하게 잘 정리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도, 나와 대화할 때도, AI와 대화할 때도 우리는 생각을 말로 꺼내놓는 순간 조금씩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글로 남기면 그게 더 선명해진다. 흐릿하게 물에 흘러가는 게 아니라, 돌에 새기듯이 나라는 사람과 나의 관점이 정리된다.


요청만 하면 0.3초 만에도 글을 뱉어내는 AI 시대에 글쓰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온전한 나의 글이라는 건 AI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않고 연필로 내가 꾹꾹 눌러썼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AI를 활용해서 내가 더 깊게 생각하고, 내가 몰랐던 빈틈을 발견하고, 내가 단어와 문장 그리고 구조를 선택하며 하나하나 쌓아 올린 글은 나의 매력이 듬뿍 담긴 글이다.


AI는 글쓰기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AI가 좋은 글을 써낸다고 주장하는 프롬프트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AI를 나에게 맞게 활용해서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정확하게 말하고, 더 나다운 문장을 쓰게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 찾는 것이다.


물론 현재 AI가 가진 한계도 언젠가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 AI는 가속해서 발전한다. 분명 그때쯤엔 AI에게 그냥 '써줘'라고 말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을 쓸 거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AI와 함께 글을 쓰는 법을 빠르게 배우면, 그때의 우리의 글과 생각은 더욱 가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


AI 시대에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AI보다 잘 쓰기 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AI와 함께 더 잘 생각하기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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