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동안...

by봄이

이 글을 써놓고 한 달 넘게 묵혀 두었습니다.


한국을 다녀온 뒤에는 늘 비슷한 마음병을 앓습니다. 이유 없이 허전하고, 사람들 틈에서도 문득 문득 고독해지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마저 멀어집니다.


그 시간을 지나고 나니 비로소 이 글을 내놓을 용기가 생겼습니다. 늦은 봄비처럼 조금 늦었지만, 오늘 올려봅니다.


오랜만에 한국을 다녀왔다. 지난 2월 중순부터 4월 29일까지, 두 달 남짓 집을 비우면서도 나는 막연한 믿음 하나를 품고 있었다.


“영국의 봄이라면, 웨일스의 하늘이라면 응당 촉촉한 비를 내려주겠지.”


그 믿음을 비료 삼아 실내에 있던 화분들까지 마당으로 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하지만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마주한 정원의 모습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대문을 열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화사한 꽃들의 합창이 아니라 바짝 말라버린 초록의 잔해들이었다. 웨일스의 봄비는 야속하게도 이번만큼은 예외였던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 보니 화분이며 정원의 나무들이 고사 직전이었다. 땅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었고, 생명은 그 틈 사이로 빠져나간 듯했다.


평년보다 적었던 강수량과 이례적으로 화창했던 날씨는 내가 집을 비운 사이 화초들의 수분을 조금씩 앗아갔다. 밖으로 내놓았던 실내 화분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빛바랜 색으로 변해 있었고, 원래부터 자리를 지키던 화초들마저 잎을 떨구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비를 머금고 무성하게 자랐을 줄기들이 듬성듬성 빈자리를 드러낸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자연의 섭리를 믿고 맡겼던 나의 안일함이 결국 아이들을 갈증 속에 홀로 남겨둔 것만 같아 미안함이 앞섰다.

그런데 묘하게도 앞마당의 잔디는 달랐다. 화초들이 목마름에 지쳐갈 때, 잔디는 이 상황이 오히려 기회라도 된다는 듯 무서운 기세로 마당을 점령해 버렸다. 화초가 있던 자리를 대신한 빽빽한 초록의 물결. 생명은 이토록 불공평한 것일까.


귀하게 가꾸던 꽃들은 섬세한 돌봄 없이는 한 계절도 버티기 힘든데, 잡풀과 잔디는 주인의 부재를 틈타 자신들만의 질서를 세워 놓았다.


무성해진 잔디밭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마른 화분들을 바라보며 나는 산다는 것의 균형을 생각한다. 넘치면 넘치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무언가는 죽고 무언가는 살아남는다. 그러나 내가 정성을 쏟던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거친 풍요는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


이제는 잡초를 솎아내고 마른 흙에 물을 줄 시간이다. 정글이 되어버린 잔디를 정리하고 다시 화초의 자리를 마련하면서, 나는 이 정직한 자연의 기록 앞에서 새삼 겸손해진다. 봄비의 부재가 남긴 흔적은 아프지만, 다시 물을 머금고 살아날 정원의 내일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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