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운동을 할 때, 바깥으로 향하는 힘이 원심력이고 안쪽으로 향하는 힘이 구심력입니다. 이 두 힘이 균형을 이루어서 원운동을 계속하게 됩니다. 바깥으로 나가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일정한 반지름으로 회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계가 느리게 걷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하루는 달팽이 마냥 한없이 늘어지고 뒤쳐지곤 했다. 그 하루를 벗어나고 싶어, 내 인생의 원심력을 다해 솟구쳐 오르려 애썼지만 이내 인생의 구심력은 향방 없는 힘의 균형으로, 내 발을 흙냄새 가득한땅 곁에 붙들어 두곤 했다.
아침께 눈 비비고 일어나기 바쁘게, 세상은 화염처럼 오래된 구식 텔레비전으로 빨려 들어가곤 했다. 언니들의 연지곤지 출근 준비는 매일 보는 일상이건만 신기할 따름이었다. 뽀얀 피부의 어여쁜 마스카라, 분칠까지 가히 예술의 경지를 가늠하게 되는 밀도 높은 시공간. 창호지의 격자무늬 문짝 옆에 세워진 전신 거울 그리고 원형의 둥근 거울, 언니들 손에 쥐어진 뚜껑 달린 거울까지, 세상은 오색 찬란한 거울빛으로 어수선한 아침을 열곤 했다. 헤어 드라이기의 열폭 넘치는 온도는, 그 시절 찾고 싶었던 누군가의 꿈을 담아, 나와는 다른 속도로 세월이 흘렀던 것일까.
[출처] #11. 추억의 간식 달고나 뽑기 세트 만들기
동네 꼬맹이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면 의례 어린이 TV프로그램 '뽀뽀뽀'를 보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어머니의 설거지 소리와 혼재되어 들리던 아침 드라마 소리, 그 뿌연 기억 속엔 어김없이 흙냄새가 소환되곤 했다. 출근 시간대가 끝날 즈음이면, 거이 매일 집 앞 흙투성이 길을 오가는 다채로운 장사꾼 아저씨들의 목청 가득한 외침들이 골목을 채우곤 했다. 리어카 가득 실은 과일장수뿐 아니라 채소장수, 도토리묵 장수, 종종 아랫동네부터 순차적으로 다녀가시는 뻥튀기 아저씨의 '뻥이요~' 외침까지 온갖 소리는 흙향에 버무려지곤 했다. 화장품 방문판매 위해 향긋한 꽃내음으로 동네 아주머니들과 밀담을 나누는 초록빛 제복의 아주머니들, 칼을 갈아드릴 뿐 아니라 오래된 가전과 그릇도 산다며 섬뜩한 비즈니스를 외쳐대는 아저씨의 출현까지 다채로운 오전 풍경이 어젯일 같다.
[출처]#11. 추억의 간식 달고나 뽑기 세트 만들기
집에서 일분이면 내달을 수 있는 가게와 문구점들, 철물점, 신발가게 나열들은 어린 우리에겐 익숙한 풍경이었다. 우리 산동네 가게들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주택형 상업지구였던 터라, 가게 안은 비좁거나 투박했다. 여름에 가게에 들어가면, 천장에서 뱀의 입술처럼 수직으로 내리 달은 끈끈이엔, 오늘 아침 우리 집에도 들렸을 법한 파리 몇 마리가 파닥거리며 숨을 죽이고 있다. 에어컨이 있을리 만무한 뙤약볕 작렬한 달동네 집집마다 오래된 선풍기들의 웽웽거리는 소리조차 정겨웠다. 먹고살기 바빠 차마 청소하지 못한 선풍기 날개의 오래된 먼지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적었다. 어쩜 오래 쌓인 먼지와의 동행은 오히려 일상적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졸라댄 깐도리 아이스크림을 집어드는 날은 횡재한 날이었다.
추억의 문방구와 솜사탕
문방구 전경
동생과 깐도리 아이스크림 하나씩 해치우고는 본격적으로 그 시절 우리의 본업은 시작되었다. 동생은 집 앞 흙길에서 어렵게 공수받은 미니카를 연신 캬캬 소리를 내며 밀었다, 뒤밀었다 해댔다. 그 도로변에 동네의 요람이 된 마루는 나의 주무대였다. 어느 집에서 버리다 만 장판으로 어설프게 댄 나무마루는 집 안방의 행색을 하곤 했다. 그곳에서 동네 친구들과 마론 인형을 흔들어 대며 여러 장르의 연극을 풀어냈다. 허리가 부러져 철사줄로 댄 비실대는 인형이지만 어엿하게 다리가 구부러지는 귀한 마론인형은 동네 여자 동무들의 재산목록 1위가 되곤 했다. 간혹 솜사탕 아저씨가 이 구역을 지날때면 동네 아주머니들 낯빛이 대략 난감해 지곤 했다.
솜사탕
그 옛날 코 질질 흘리며 사 먹던 달고나, 뽑기 놀이,불량식품, 뻥튀기 아저씨의 인심은 창공을 가로지르며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추억의 달고나
세월이 흘러 그 흙길엔 아스팔트가 깔리고 80년대 근처 대학생들의 데모결에 가스 흐린 날을 겪어내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이 한참일 때는 그 동네 학생들이 모여 새벽 청소를 했고 말쑥한 중학생이 되어서는 더없이 분주한 무한 경쟁의 발자취와 함께 했다. 그 아스팔트를 따라 봉천사거리엔 서울대 전철역이 들어섰다.
구불구불 아스팔트가 되어버린 길 위를 내리는 하얀 눈송이의 겨울, 어느 해는 눈이 어린이 옆구리까지 내려 천지가 새햐얗게 덮이기도 했었다. 땅길을 다니던 동네 리어카 장수들은 점점 줄어들고 야쿠르트아주머니가 주도권을 얻게 되던 그즈음, 흙길이 드물어진 동네엔급기야 재개발 광풍이 휘몰아쳤다. 내가 태어난 봉천동, 40년 세월이 지나 그곳은 이젠 빼곡하고 말쑥한 아파트단지가 되었다.
70년대 추억의 어린이 모습.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텔레비전 방송을 텔레비전 앞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열심히 보고 있다. 당시 주택의 주 난방기구였던 석유난로의 모습도 보인다. 아파트가 보급되기 전 단독주택이 일반적인 형태의 주거형식이던 시절 석유난로는 가족들을 거실로 모이게 했었던 귀한 존재였다.
70년대 겨울은 지금보다 추웠다. 밖에서 노는 아이들은 두꺼운 털옷을 입고 놀았다. 또한 요즘 아이들같이 나이끼리 끼리끼리 노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떠나서 놀았다. 동네 아이들은 그래서 다 친구가 되었다.
당시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재산목록 1호는 세발자전거였다. 동네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생활이 넉넉지 못하던 그 시절 세발자전거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버스마다 안내양이 있던 시절. 10대 말부터 20대 초반까지 나이대에 있던 안내양들은 어린이가 차를 타면 세심하게 살펴주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는 돈이 귀한 시절이라서 어린이들에게 저축을 해야 한다고 부모들이 가르쳤고 슬롯캠페인으로 저축장려 운동이 벌어졌었다. 돼지저금통에 10원짜리를 저금하는 아이가 무척이나 귀엽다. 요즘은 10원, 100원을 저축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작은 아이 손위에 놓여 있는 10원짜리 동전. 지금보다 돈가치가 높던 시절 10원짜리 하나면 눈깔사탕 하나는 사 먹을 수 있었다.
동네에 어린이들이 펩시콜라 파라솔 밑에 모여 있다. 아마도 어느 상인이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장사를 하는 모습인가 보다. 달고나, 뽑기 등은 그 시절 아이들의 좋은 군것질 거리였다.
70년대 놀이터의 모습. 허접하기 십상이지만 당시 이 정도 놀이터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놀이터가 많지도 않았고 놀이터의 놀이 시절도 이 정도가 다였던 시절이었다. 그네나 시소밑에 모래를 깔아놓은 놀이터는 그래도 관리가 참 잘된 좋은 놀이터였다. 대부분 시멘트 바닥 위에서 설치되어 있곤 했다.
위험한 건축현장에서 뛰노는 아이들 모습. 지금 요즘 부모들이 보면 기겁을 하겠지만 당시에는 이런 곳이 동네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건설현장에서 높은 곳에 매달리기 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분명 그때 아이들이 지금의 아이들보다 용감하고 활달했다. 물론 많이 다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부모들은 요즘 부모들처럼 난리를 치지는 않았다.
어디든지 모이면 놀이터였고 그곳에 있는 아이들이 친구였던 시절의 모습. 지금은 너와 나의 구별이 확실했지만 그때는 다 우리였다. 이미 이 시대는 우리란 개념이 희박한 시대가 되었다.
모두 다가 가난하고 곤궁했던 시절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일터에 데리고 나가 한켠에서는 장사하고 한켠에서는 놀던 아이들의 모습도 당시에는 흔한 모습이었다. 철이 든 아이들은 부모님의 장사를 옆에서 돕곤 했다. 요즘은 어린아이를 장사하게 놓아두면 법에 저촉되지만, 그때는 그런 것을 따질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고 다같이 힘들고 빈곤했던 시대였다.
당시는 어린이라고 해서 지금같이 특별대우를 받지 못했다. 집안이 어려우면 비록 어려도 집안 일을 도와야 했고 연탄정도 나르는 일은 가장 기본적으로 도와야 했었던 일이었다.
문학을 위해 목숨을 건 고투
본명 박금이. 박경리는 1926년 10월에 통영에서 태어나 아버지와의 불화 속에서 성장기를 거쳐 1946년 김행도와 결혼한다. 그러다가 한국 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이어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는다. 이러한 상처를 문학으로 풀어낸 그는 진주여고 선배였던 김동리의 부인을 통해 자신이 써 둔 원고를 김동리에게 보인다. 습작 원고를 보고 반응이 없던 김동리는 얼마 뒤 작품을 들고 ‘문예살롱’으로 나오라는 전갈을 보낸다. 그곳에서 김동리로부터 시보다는 소설을 써 보라는 권유를 받아 소설을 쓰기 시작하지만, 낯가림이 심했던 그는 곧 ‘문예살롱’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박경리의 습작 원고를 가지고 있던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단편 소설로 시작한 박경리는 약 26년이 걸린 장편 소설 <토지>로 작품 활동을 마친다. 한국 전쟁의 고통과 군사 독재 시대의 참혹함 속에서 사위인 김지하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2008년 5월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당시 정부는 박경리가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하였다.
폐쇄적인 자아에서 슬롯적 현실까지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군사 독재 등의 파란만장한 현대사 속에서 박경리의 삶은 남편과 아들의 죽음 등 불행에 물들어 있었다. 박경리의 초기 소설은 한국 전쟁을 체험한 직후의 상처를 문학으로 풀어내는 과정으로 자전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 시기의 작품 대부분에서 한국 전쟁 중 남편을 잃은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대부분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고지식한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로, 이들을 통해 그 시대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삶을 그리워하고, 부정과 악, 허위와 위선, 금전적 이윤 추구만 가득한 인간과 슬롯에 대해 증오를 나타낸다. 박경리는 자신의 삶 속에서 겪었던 일들을 문학적으로 사실감 있게 담아내었고, 그가 겪은 불행이 개인의 운명이 아닌 시대와 슬롯의 부조리에 의한 것임을 드러내었다. 이후 1959년 <표류도>를 기점으로 박경리는 단편 소설에서 장편 소설로 중심을 옮기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개인의 불행에만 집중하다가 중기로 오면서 타인과의 유기적 관계로 초점이 옮겨 간다. <김 약국의 딸들> 에서는 딸들의 운명을 통해 자기 체험의 서술에서 벗어나 객관적 시점을 확보하고 기법과 소재 등도 다양해진다.
우리 민족의 근대사와 삶, 그리고 한(恨), 대하소설 <토지>
<토지>는 구한말 경상남도 하동 평사리를 배경으로 첫 장을 연다. 박경리는 1969년 《현대문학》에 <토지> 1부를 발표한 후 1994년에 탈고할 때까지 약 26년간 이 작품을 집필하는 데 몰두했다. 총 5부 16권으로 구성된 이 대하소설은 대지주인 최 참판 댁을 중심으로 하여, 최 참판 댁을 둘러싼 친척, 다른 양반집, 하인들, 농민들, 목수, 포수, 노비, 천민 등 다양한 신분과 여러 사정을 가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소설을 끌고 나간다. <토지>는 개화기의 개항, 의병 항쟁, 동학 농민 운동, 독립운동 등 우리 민족의 현재를 만들어 낸 사건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담아낸 소설로 민족의 한과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조망, 그리고 개인의 운명을 동시에 포착하고 있다.
박경리는 일상의 현실에서 삶을 영위하는 평범한 생활인의 시각과 전쟁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의 시각을 동시에 부각시킴으로써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담고 있다.
1926년 10월 28일 경남 충무 출생. 1945년 진주여고 졸업.
1955년 단편 「계산」과 1956년 「흑흑백백」이 『현대문학』에 추천됨으로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957년에는 전쟁 후의 상처를 다룬 「불신시대」를 발표하여 제3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는 등 신인작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58년에는 「도표 없는 길」, 「암흑시대」와 장편 「연가」를 발표하였으며, 1959년에 장편 「표류도」를 발표하여 내성문학상을 수상했다.
박경리의 초기 작품들 가운데는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고 사는 전쟁 미망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많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불신시대」인데 이는 한 여성의 눈을 통해 부정과 위선, 허위로 가득 찬 현실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1960년대 접어들어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발표하면서 작품세계의 전환을 이루고 있다. 자기 체험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점을 확보하였고, 제재와 기법면에서 다양한 변모를 보인다.
장편 「시장과 전장」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사의 비극을 두 가지의 시각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데, 일상의 현실에서 삶을 영위하는 평범한 생활인의 시각과 전쟁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의 시각을 동시에 부각시킴으로써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담고 있다. 박경리는 1969년 이후부터는 대하 장편소설 「토지」에 몰두하였다. 「토지」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 식민지시대를 거치기까지 역사의 변화 속에서 한 양반 가문의 몰락과 그 전이과정을 그렸다.
봉건적인 가족제도의 해체와 계급의 해체, 서구 문물의 수용과 식민지 지배의 과정, 간도생활과 민족이동의 문제 등이 모두 역사성의 의미를 획득하고 있으며, 그만큼 진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25년에 걸쳐 완성된 「토지」는 한국 대하소설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 작품집으로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 『시장과 전장』(1964), 『파시』(1965), 『토지』(전16권 완간, 1994) 등이 있다.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 제7회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
학력사항
~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
수상내역
1957년 작품명 '불신시대' - 제3회 현대문학 신인상
1959년 작품명 '표류도' - 내성문학상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
제7회 월탄문학상
연보
1926 10월 28일 통영 명정리에서 박수영씨 장녀로 출생(본명 박금이).
1945 진주여자고등학교 졸업.
1946 1월 30일 김행도씨와 결혼.
1950 12월 남편과 사별.
1955 《현대문학》8월호에 김동리에 의해 단편 《계산》 초회 추천.
1956 《현대문학》 8월호 단편 《흑흑백백》으로 문단 활동 시작.
1957《만주신보》에 첫 장편 《애가(연가)》 연재. 8월 단편 《불신시대》발표. 제 3회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박경리(朴景利)가 지은 장편소설. 1969년부터 집필에 들어가 1994년에 전 5부 16권으로 완간한 대하소설이다. 한말의 몰락으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대에 이르는 과정을 지주계층이었던 최씨 일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폭넓게 그려내고 있다.
지난 시대 한민족(韓民族)이 겪은 고난의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해 낸 점에서 <토지>는 역사소설의 규준에도 적응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탐구로서 더 큰 성과를 얻고 있다.
제1부의 시간적 배경은 1897년 한가위에서부터 1908년 5월까지인데, 평사리라는 전형적 농촌마을을 무대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평사리의 전통적 지주인 최참판댁과 그 마을 소작인들을 중심인물로 하여 최참판댁의 비밀(최치수의 살해사건 등)과 조준구의 계략, 귀녀·김평산 등의 애욕관계 등이 한데 얽혀 한말의 슬롯적 전환기의 양상이 그려져 있다. 특히 일제에 의한 국권상실, 봉건 가부장체제와 신분질서의 붕괴, 농업경제로부터 화폐경제로의 변환 등 한말 슬롯의 변화가 소설의 배경이 되면서, 최참판댁의 몰락과 조준구의 재산 탈취 과정을 주요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
제2부의 시간적 배경은 1911년 5월 간도 용정촌의 대화재로 시작되어 1917년 여름까지인데, 여기서는 경술국치 이후 1910년대의 간도 한인슬롯의 삶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조준구의 계략에 재산을 빼앗긴 서희의 간도 이민의 형태를 빌리면서 서사적 공간이 이동되기 때문이다. 간혹 지리산 동학 잔당의 모임을 제외하고는, 국내정세보다 간도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정세가 주요한 배경을 이루면서, 최 씨 일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독립운동의 양상을 폭넓게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 서희의 복수, 곧 최씨 일가의 귀환을 향해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다.
제3부는 1919년 3·1운동 이후 1929년 원산총파업과 광주학생사건까지 1920년대의 진주와 서울 같은 도시에서의 삶이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서희의 노력에 의한 최씨 일가의 대상(大商)으로의 성장이 발판이 되어 일제에 의하여 추진된 식민자본주의화 과정을 도시를 중심으로 그려놓고 있는 데 연유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운전수·의사 등 직업인과 교사·신여성·문필가 같은 지식층이 대거 등장한다. 그리고 복수 후 허무에 부딪친 서희의 삶과 동학 잔당의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려던 김환은 일제의 고문 끝에 죽음에 이르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송관수로 전형화되는 민중적 삶과 서울의 임명희를 둘러싼 지식인과 신여성들의 삶으로 이동한다.
제4부는 1930년부터 1937년 중일전쟁과 1938년 남경학살에 이르는 시기가 배경이다. 서사의 공간은 서울·동경·만주에서 하동·진주·지리산까지 더욱 확대되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더욱 다원화된다. 그러면서 민족주의·공산주의·무정부주의 등 독립운동의 여러 노선이 제시되는가 하면, 지식인들의 사상적 경향과 등장인물을 통해 일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시도된다. 길상의 출옥과 군자금 강탈사건, 윤인실과 오가다의 사랑이 중요한 서사적 의미를 지닌다.
제5부의 시간적 배경은 1940년부터 1945년 8·15 광복까지인데, <토지>의 대단원을 맺는 부분이다. 송관수의 죽음,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단체의 해체, 길상의 관음탱화 완성, 오가다와 유인실의 해후, 태평양전쟁의 발발, 예비 검속에 의한 길상의 구속 등이 이어지면서 <토지>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특히 5부에서는 광복의 날을 기다리는 민족의 삶들이 펼쳐지는데, 양현과 영광, 윤국의 어긋난 사랑이 중요한 갈등을 이룬다. 이처럼 <토지>는 최씨 일가의 3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이 이루어놓은 슬롯적 공간에 따라 당대 슬롯의 변모가 충실히 그려져 있다. 또한 서희와 조준구의 원한관계, 월선과 용이의 한(恨) 많고 영원한 사랑, 김환의 죽음 등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양상 또한 폭넓게 형상화되어 작품의 대강을 형성하고 있다.
<토지>에 대한 작품 분석은 26년이란 오랜 집필 기간 속에서 부분적으로 실시되었는바, 전 5부가 완간되어 총체적인 분석이 가능해졌다. 작자 자신도 언급했듯이 <토지>는 여느 역사소설과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이것은 작자의 전반적인 소설세계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아야 할 문제이다. 박경리 소설은 인간삶의 역사적 배경과 현실에 궁극적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이 문제들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인간 삶의 근원적인 면에 대해 탐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박경리는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소설화했다.
특히 작자는 <토지>에서 간난(艱難)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恨)과 강인한 생명력에 대해 서사적 관심을 갖는다. 한이 깊은 자신의 삶을 사랑의 차원으로까지 아름답게 승화시킨 송관수나 주갑이·조병수 등은 박경리가 창조한 대표적 인물이고, 이 소설이 보여주는 인간 탐구 내용의 핵심이다. 작자에 따르면 한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는 정서가 아니라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근원적 모순에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한은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해 일어나는 슬픔이기도 하지만, 모순을 극복하려는 동기와 염원, 희구를 낳는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성격을 지닌다. 영원한 것은 추구하기 위해, 혹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된다. 그러므로 이 한을 어떻게 승화시키는가 하는 문제는 작자에게 본질적 물음인 셈이다. 여기서 작자는 한을 지니게 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제시하고 그들이 한을 간직한 채 어떻게 살아가며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천착한다.
<토지>의 인물 대부분이 이 한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의 사상’은 작품의 핵심 중 하나이다. 곧, 작자는 한의 문제를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 형상화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인간탐구를 통해 <토지>는 인간의 보편적 본질에 대한 이해를 깊게 도모하는가 하면, 새로운 시대에 인류가 성취할 삶의 방식에 대한 전망을 보여 준다. 한편, 작자는 ‘한의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생명사상’을 형상화한다. 그리하여 작자는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물질적 힘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그 생명들이 균형과 긴장을 이루는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양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랑을 주제화한다. 작자는 이 생명사상을 소설 속 인물들의 사랑을 통해서 형상화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지>에 나타나는 사상은 ‘생명사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작자는 이 ‘생명사상’을 통해 한민족(韓民族)의 세계관이 지닌 인류보편적 가치를 선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을 삭이고 사랑으로 승화시켜 창조적으로 변용하는 인간을 그리는 것은 실제로 한민족에게 있었던 인간의 모습이며, 있어야 할 인간의 모습을 작자는 창조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생명들이 자신을 창조성의 존재로 고양시키는 세계에의 기대이며 참다운 생명에의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생명사상에 대한 형상화는 작품에서 관음보살상을 조성하는 일을 초반부터 예시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길상으로 하여금 실제 작업을 완수하도록 하는 데서 여실히 알 수 있다.
이로써 작자가 <토지>를 지은 것은 길상이 관음보살상을 그리는 것과 동일한 작업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작품에 그려진 인물들의 모습은 바로 그 큰 자애의 마음에서 창조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김두수나 조준구 같은 부정적 인물들, 정석이나 송관수 같은 험난한 인생 역정을 살아가는 인물들, 몽치나 모화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그리는 데 있어 작자는 자애의 마음으로써 형상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절대자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이나 복종보다도 개개 생명에 대한 큰 자애심을 강조하는 동양적 세계관이 이 작품의 심층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토지>가 한국소설사에서 갖는 소설사적 위상은 크다.
하지만 <토지>는 여러 논자들에 의해 한계가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근대전환기의 역사 현실, 즉 봉건슬롯의 해체와 근대슬롯로의 이행을 토지와의 관련 속에서는 살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슬롯를 개혁하려는 제반 운동과 지향의 기본동력을 산출해 낸 봉건적 토지 소유관계의 모순과 그 모순의 발현양상에 대해서는 작자가 심도 있는 형상화를 하고 있지 못하다. 이처럼 토지와의 관련을 고려하지 않을 때, 신분질서의 해체는 단순한 현상에 불과할 뿐이지 역사 전개의 본질을 담아내는 데까지 미치지 못한 문제점을 낳는다. 자칫하면 근대전환기라는 서사적 배경이 소재주의로 전락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토지>는 앞서 언급한 바처럼 ‘한의 사상’과 ‘생명사상’을 근간으로 한 인간의 본원적 진실을 탐구하고, 언어예술로서의 사투리와 속담·격언 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한국어가 지닌 미적 특질을 최대한으로 살림으로써 한국소설사에서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경리 문학공원(朴景利文學公園; Pak Kyongni Literature Park)은 강원도특별자치도 원주시 토지길 1에 위치한 문학 공원이다.
박경리가 1980년 서울을 떠나 《토지》의 4부와 5부를 완결한 단구동의 옛집이 1989년 토지개발계획으로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한국토지공사에서 공원부지로 전환, 1997년 9월 착공하여 1999년 5월에 완공하였다. 박경리의 옛집과 정원을 모두 원형대로 보존하였고 공원은 소설 토지의 배경에서 따온 용두레벌, 평사리 마당, 홍이동산 등 3개의 테마공원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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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토지의 날 행사 : 문학포럼, 서사음악극, 시상식 등
박경리 옛집
박경리가 18년간 살았던 공간으로 소설 《토지》를 완성한 곳이다. 입구에는 박경리의 손자를 위해 손수 만든 연못이 있고, 마당 한켠에는 박경리가 가꾸었던 텃밭이 남아있다. 건물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1층은 박경리가 생활하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고, 2층은 문학인들을 위한 사랑방으로 활용 중이다.
평사리마당
평사리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고향이다. 평사리마당은 소설 속에 표현된 섬진강 선착장과 둑길 등을 조성한 공간이다.
북카페
바카라을 대여할 수 있는 1층의 휴게공간과 일제강점기 교과서와 희귀자료가 전시된 2층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
홍이동산
소설 《토지》 속의 아이 주인공인 홍이에서 따온 공간으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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