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인사

못다한 이별

by정아

출근길에 빨간색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 섰습니다. 초록불을 기다리며 무심코 고개를 돌려 횡단보도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먼 거리에서 보이는 모습이 낯익어 보였습니다. 자전거를 옆구리에 잡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던 한 어르신의 모습이 눈에 익숙했습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혔습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향했고, 실눈을 뜨고 자세히 쳐다보았습니다. 너무나 비슷한 형체에 아버지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무실에 오는 10분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직 마음속 구멍이 커다랗게 있었던지라 조그만 기회라도 생기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고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직 ‘안녕’이라 고하지 못한 감정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지인에게서 바카라 한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지역 작가가 출간한 이제 막 나온 신간이었습니다. 선뜻 읽어내려가지 못했습니다. 어떤 감정으로 그런 것인지 설명하기는 복잡하고 미묘한 느낌이지만. 바카라을 손에 들고 펼쳐보기까지 며칠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바카라상에 쌓여있는 바카라 무더기 위에 놓은 채 지나쳤던 바카라을 출근길 아침 가방에 넣었습니다. ‘시간 날 때 잠깐 읽어볼까.’하는 마음으로 바카라을 들고 왔습니다.


출근길에 조금씩 내리던 비가 큰비로 바뀌었습니다.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어둑어둑해진 사무실은 습기로 가득했습니다. 지난주에 에어컨은 고장이 나서 깜빡이고 있습니다. 눅눅하고 끈적거리기까지 했고, 바닥에 떨어진 빗물을 닦은 흔적은 오래도록 마르지 않고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묵직한 비구름은 하늘을 회색빛으로 물들였습니다. 가득 머금은 수분으로 낮게 드리워진 구름은 곧이어 장대비를 내뿜었습니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빗방울이 ‘타타닥’하고 튕겨 들어왔습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거기, 봄날>이라는 바카라을 펼쳐보았습니다. 작가의 말을 읽고, 이어서 목차를 살펴본 후 본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서서히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면 안 돼! 멈춰, 멈추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바카라을 읽어내려갔습니다. 도무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카라의 내용이 비슷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아버지’의 내용을 읽으면서 어느 구석에서 느껴지는 동질감이 있었나 봅니다. 감정이 차오르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몇 장을 읽고 바카라장을 다시 덮었습니다. 지금은 바카라상 한쪽 독서대 위에 뒷면을 보이며 놓여있습니다. 아직 꺼내 들고 읽어갈 마음이 부족합니다.


얼마 전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글로 적어놓은 것이 작년 아버지와의 이별에 아직 메워지지 않은 큰 구멍에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그 바람을 타고 감정이 차오르고 뜨거운 것이 마음을 자극했습니다. 나에게 너무 큰 나무였기에, 아직 준비하지 못한 이별이었기에 길고 깊은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유독 컸던 만큼 슬픔과 그리움이 크기를 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 날을 뵈면서도 준비하지 못하고 맞이한 이별은 차마 ‘안녕’을 고하지 못합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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