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의 축척은 어른과 다르다.
5살 조카의 잰걸음을 보면서 처음 실감했다. 내가 느긋하게 휘적휘적 걸어도 닿을 거리를, 이 작은 아이는 벌새처럼 빠른 다릿짓으로 날아가듯 뛰어야한다.
이 아이에게 세상은 얼마나 넓을까.
내 보폭이 이 아이에게는 두세 걸음이다. 내가 한 번 훑고 지나가는 골목이 이 아이에게는 탐험이고, 내가 잠깐 앉아 쉬는 공원 벤치가 이 아이에게는 등반이다.
넓은 세상을 건너려면 그만큼 많은 연료가 든다. 아이들이 그 무한해 보이는 체력을 타고난 건, 아마 그들이 건너야 할 세상이 그만큼 광활하기 때문이겠지.
어릴 적, 우리 집 냉장고 냉동실은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손이 닿았다.
부엌 찬장은 올려다봐도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지금 나는 그 냉장고 앞에서 허리를 숙인다. 손을 뻗으면 찬장 구석까지 닿는다. 세상이 줄어든 게 아니라, 내 키가 세상을 따라잡은 것이다. 어느덧 우리 엄마는 내 어깨만큼으로 줄어들었고, 그제야 그 부엌이 엄마에게 맞춰진 크기였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조카들을 목마 태운다.
어깨 위에 앉은 아이는 순식간에 제 키의 두 배가 된다. 저 멀리까지 보인다며 손을 뻗는다. 나는 그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고, 오랜만에 아이의 눈으로 저쪽을 본다.
같은 세상인데, 다시 조금 넓어진다. 아이는 내 속도로 세상을 가로지르고, 나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올려다본다.
잠깐이지만, 두 개의 축척이 하나로 포개진다.
목마 타는게 지루하다고해서 내려준 조카가 금새 저만치 앞서 달려간다. 나는 뒤에서 그 뒷모습을 본다.
조카는 저 작은 몸으로 세상을 전부 끌어안으려는 듯 팔을 휘젓는다. 쫓아가지 않아도 된다. 저 활기가 내 시야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