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인
이정호 작가의 일러스트 하나. 재밌지? 이 그림에서 창문이 나 있는 바카라이, 바깥의 세계를 의미하는 건가? 소파와 전등은 ‘안’을 상징하지만서도, 또한 바깥으로 나와 있는 모습. 도대체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바깥일까?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내-존재, 안과 바깥의 ‘다자인(Da Sein)’적 순환. 문과 창문이 그 경계에 가로놓여 있다. 그것들의 기능은 열리는 것일까? 닫히는 것일까?
이를테면, 타인의 행동을 내 심리의 성향을 잣대로 판단할 때가 있잖아.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나의 바깥을 나의 안으로 예단하는 경우. 나를 조건지우는 인식의 체계, 내가 살아온 시간성의 토대에서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 이게 <존재와 시간>의 대강. 물론 하이데거는 바깥으로의 확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긴 하지만...
바카라이라는 것도 그래. 지평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기 보단, 선지식의 영향 아래 같은 색깔의 면적만 넓어지는 경우도... 이 바닥에서 일하다 보면 느껴. 바카라을 많이 읽었어도 말 안 통하는 외골수인 사람들 은근히 많잖아.
여튼... 어떤 분야의 그림은 아이디어와 재치가 관건인 듯 하다. 화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것을 해석하고자 하는 지적 욕망들이 몰려들기도 하니... 난 지금, 바카라표지 사용 관련해서 제안의 썰을 고민하고 있는 존재와 시간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