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야기, 벚꽃 풍경 -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언젠가는

교직을 떠나오던 해의 마지막 학기에, 교문 밖 흡연구연의 벚나무들이 그렇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거기 있었던 것들인데... 계절이 보인다는 말을 그 즈음에 이해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로 벚꽃이 피어 있는 봄의 풍경이 애잔해 죽을 지경. 저 꽃은 매년 ‘벌써’ 피거나 ‘벌써’ 지는 느낌이다.


3월 한 달은 학생부에 일이 가장 많을 때였다. 특히나 1학년들이 적응 기간 내내 어찌나 사고를 쳐대던지... 벚꽃이 필 무렵에는 나도 그들에게, 그들도 나에게 적응을 했던 것 같다. 약간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벚나무 그늘 아래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던 기억.

나는 일본 영화 특유의 서정미를 좋아한다. 서정미만 좋아한다. 심심한 서사는 별로... 간간이 한국의 일상에서 영화 속의 풍경을 찾으려 ‘낯설게 보기’를 시도하는 경우들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그런 착시의 기회를 많이 선사한다. 눈이 잔뜩 쌓인 어느 겨울날이나,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에는, 일본의 어느 마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으로 그 풍경 속을 거닐어 본다. 물론 똑같을 리야 있겠냐만, 그냥 그 영화 속의 어느 거리이겠거니 하면서,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혹은 <4월 이야기> 같은 낭만적인 스토리가 떠오르진 않을까 하는 기대로...


요새는 신카이 마코토가 왜 제목을 <초속 5cm>라고 했는지를 이해할 때가 있다. 피어있는 모습이 아름답기는 한데, 떨어지는 꽃잎의 속도가 쓸쓸히 느껴지기도 하는 풍경은, 1주일 후면 저 ‘핀 꽃잎’ 모두가 바닥을 뒹구는 ‘진 꽃잎’ 될 것이라는 허망함이 앞선다. 그래서 그 1주일이 더욱 아쉽기도 하고... 벚꽃은 도대체 어떤 양태를 감상해야 하는 것일까? 한 순간에 피어나는 화려함일까? 나무의 일부에서 떨어져 나와, 바람의 일부로 흩날리는 풍경일까? 물론 둘 다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초속 5cm의 낙화들이 더 눈에 띈다.

대학원으로 인연을 맺은 경희대 국제 캠퍼스의 교정에는 유난히 벚나무가 많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을 정도로 아름답기도 하고... 4월이 되면 한 폭의 동양화로 피어나는 절경, 그 아래로 봄을 즐기는 청춘들을 먼 시선으로 부러워하는 늦깎이 대학원생은, 그 봄을 즐겨볼 이유도 여유도 없이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한남동 캠퍼스 시절의 단국대학교에는, 정문 옆에 아주 큰 벚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의 장관을, 우리는 어느 게임의 인트로 장면에 빗대어 ‘사무라이 쇼다운’이라 불렀었다. 분명 그 시절에도 보고 있었던 봄이긴 한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봄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꽃잎비를 맞고 있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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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이제 뒤돌아보니, 이 노래를 즐겨 부르던 시절에는, 정작 이 노래가 잘 들리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던, 그래서 질문보다는 대답이 앞섰던 날들. 먼 훗날에 돌아보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 지금의 나는 또 무엇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으며, 조금 더 훗날에는 또 무엇을 깨닫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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