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다가 영원히 잠들어버렸다. 반나절 정도 휴대폰 없이 지내니 마음이 불안했다. 수리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 새 휴대폰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머리가 지끈해지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기존 사용하던 휴대폰이 켜지지 않아 데이터 이동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사진은 간간이 백업을 해뒀고 사용하던 앱들이야 시간이 걸려도 다시 다운로드하고 로그인하면 됐다. 하지만 최근 전화번호부를 별도 백업 해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소중한 것들을 기기에만 의지하고 있었다는 당황스러움에 뒷골이 뜨거워졌다.
새로 받은 휴대폰 속 연락처는 0개. 일단 외우고 있는 번호들 순으로 등록했다. 남편과 엄마, 아빠. 그래도 세명의 연락처는 외우고 있구나 싶어 스스로 뿌듯해하다가 동생 두 명의 연락처도 카톡 메신저로 따로 물어 등록했다. 그리고 요즘의 내가 가장 가깝게 지내는 몇몇 지인들에게도 연락처를 물었다. 경계심이 많은 친구는 내 연락을 스팸으로 의심해 SNS를 통해 내가 메신저로 연락처를 물은 것이 맞는지 재차 확인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렇게 최근의 나와 가깝게 지내는 이들의 연락처까지 모두 등록하고 나니 기존 전화번호부에 비해 아주 단조로워졌지만 어쩐지 더 꽉 찬 느낌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망설이게 되는 관계들이 더 많아졌던 건. 과거에는 가까웠지만 삶의 형태와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그에 대한 서로의 이해부족 등으로 자연스럽게 멀어진 사람들은 켜지지 않는 휴대폰 속 안에 남겨졌다.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나를 기억할 사람들을 추억 속에 담는다.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겠지만 그대로 두는 것이 때론 서로에게 배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크롤이 짧아진 휴대폰 속 연락처를 바라본다. 여전히 망설이지 않아도 되는 관계들이 소소하게나마 존재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아날로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은 경험 후에 소중한 정보들은 수첩 위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다시 한번 담아본다. 소중한 건 다시 한번 더 챙겨줘야 하니까. (백업은 물론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