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병원으로, 다섯번 째 이사의 기록
‘치매(癡呆)’.
멍청하고(癡), 어리석다(呆)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듣는 순간부터 이미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린다.
마치 누군가 “당신은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선언하듯.
문제는, 이것이 단지 의학적 진단명이 아니라, 슬롯에서 너무도 쉽게 낙인처럼 사용된다는 점이다.
뇌출혈 이후 혈관성 치매가 진단된 부친을 설명할 때 치매라고 하기보다는 되도록
“인지기능장애가 있으세요." 라고 하는 편이다.
이 치매라는 단어는 원래 일본의학계에서 쓰이던 말이다.
망령(ボケ)이라는 표현과 함께 일제강점기 한국의 의료 언어 체계에 이식되었고,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치매’는 하나의 병명이 아니다.
여러 가지 뇌 질환에 의해 나타나는 인지 기능 저하 증상의 총칭일 뿐이다.
가장 흔한 유형은 알츠하이머형 치매다. 전체 치매 환자의 50~70%를 차지하며, 기억력 감퇴를 중심으로 점차 판단력, 언어 능력, 시간·장소 인식 능력 등이 무너져간다.
서서히 시작되고, 되돌릴 수 없는 퇴행의 형태를 띤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 혈관성 치매다. 뇌졸중이나 뇌출혈처럼 뇌혈관에 손상이 발생한 뒤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나의 부친도 이 경우다.
기억력보다는 주의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 감정 조절 기능이 먼저 흔들린다.
그 외에도 루이소체 치매, 전측두엽 치매, 파킨슨병 치매처럼 다양한 원인과 경로가 있다.
누군가는 환각과 망상을 먼저 경험하고, 누군가는 충동 조절이 안 되며, 누군가는 말이 아닌 표정과 눈빛부터 바뀐다.
치매는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하나의 단어로,
‘어리석다’는 뜻의 이름으로 묶어 말한다.
반면 영어권에서는 dementia, 또는 cognitive impairment, neurocognitive disorder라는 보다 기술적인 표현이 사용된다.
이 단어들에는 인격에 대한 모욕이 없다. 단지 기억이나 인지기능의 저하라는 설명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왜 아직도 ‘치매’라는 단어를 쓰고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잃어가는 이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을 ‘어리석음’으로 규정지은 채.
부친은 발병 후 오늘로 다섯 번째 이사를 했다.
인천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시작으로, 보호자를 괴롭히던 재활병원, 개인 간병인 없이는 재활을 받을 수 없던 시립병원, 환자 약점을 활용해 상급병실 이용료로 수익을 올리던 민간병원, 그리고 오늘 도착한 요양원까지.
한 사람의 병력 기록이 아니라, 핍박을 하나씩 거치는 지옥행 여정 같았다.
그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처음 6개월은 급성기 병원에서 보냈다.
의식이 돌아오고 인지와 신체 능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매일 병원에 가고 미세한 움직임 하나에도 일희일비하던 시간.
그 뒤 회복기 재활병원으로 옮겼고, 이 시점에서 인지기능 저하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밤마다 섬망이 찾아왔다. 환시가 생기고, 공격적 행동이 나왔다.
병원 측의 소극적인 대응, 보호자에게 바카라임을 돌리는 구조를 경험했다.
퇴근 후 밤마다 불려 가 밤새 부친을 재우고 다시 출근하는 여름밤을 보냈다. 이 미친 짓을 지속하는 건 불가능했다.
병원의 갑질에 견디지 못하고 다시 급성기 병원으로 옮겼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는 재활치료가 불가능했고, 나처럼 홀로 간병하는 보호자는 선택권이 없었다. 일반 병동에서는 24시간 보호자가 상주하거나 별도의 간병인을 고용해야만 했다.
간병인을 둘 수 없는 보호자는, 하루종일 재활도 못하고 천장만 보고 묶여있는 그를 데리고
다시 간호간병서비스가 되는 병원을 찾아 떠돌 수밖에 없다.
겨우 다시 회복기 재활병원으로 돌아갔지만, 이번엔 부친의 코골이 문제로 일반 병실 이용이 어려워졌다.
병원은 상급병실 사용을 권유(강권)했고, 다른 환자들의 민원이 이어졌다는 이유로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 치료를 계속하려면 돈을 더 내라는 뜻이었다. 네 부모 코골이가 크고 시끄러우니 그만큼 돈을 더 내라.
누적되는 고액의 병원비는 곧 가계의 위기를 불러왔고, 상급병실에서의 재활 6개월을 버틴 끝에 결국 요양원으로의 전환을 결정하게 되었다.
오늘 경기 외곽의 요양원에 도착해, 여기 어떤 것 같냐 물으니
“여기 냄새 좋다. 시골냄새.” 대답한다.
요양원으로의 이사가 주는 막연한 불효의 감정은 오히려 프레임이었는지도 모른다.
단절된 채 재활을 아침저녁으로 돌리는 환경보다, 사람과 말을 섞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했던 사람처럼 부친은 하루 종일 말이 많았다.
그동안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정말 ‘좋은 병실’이었을까.
아니면 나 스스로의 죄바카라감을 덜기 위한 무언가였을까.
요즘 나는, 그를 마주할 때 마스크가 필요하다.
웃지 못하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필요하다.
그런 나의 감정을 알아본 요양원 원장. 간호사 출신의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우리한테 맡기고, 본인도 좀 돌봐요. 좀 내려놔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그 말에 비친 나를 봤다.
지쳐버린 보호자.
애매한 복지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사람.
그리고 현실을 버티며 ‘끝은 있을까‘라고 허공에 외치는 자식.
나는 부친의 눈빛이 바뀌었다는 걸 안다.
나에게 보호를 구하는 아이의 눈빛이 되었다.
그 무게. 그 헛헛함.
나는 감당하고 싶지 않다.
그저 오늘 하루도, 내 보호 아래 놓인 그 눈빛을 최대한 외면하고 싶었을 뿐.
나는 도망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