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기회를 만든다
나는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인가. 질문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고, 질문하려고 애쓰고 있다.
오래전 일이 하나 떠오른다. 회사에서 외국산 검색 서비스 엔진을 도입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였다. 당시 10억 원이 넘는 외국산 엔진을 들여와 이용자들 대상의 서비스로 커스터마이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국내 상황과 맞지 않았는데도 프로젝트는 밀어붙여졌다. 개발자와 기획자가 회의를 했지만 뭔가 매끄럽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었다. 개발자가 직접 미국 출장을 가서 개발사의 설명을 듣고 왔지만 국내 서비스는 무리였다. 회사는 결국 테스팅만 반복하다 서비스를 접었다.
이 일을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한쪽에서 "될 수 있는 이유"를 밀어붙일 때, 다른 한쪽에서는 "왜 안 될 수도 있는지"를 물었어야 했다. 자체 개발을 하지 못하고 외국산 도입을 한다면 서비스 업데이트가 문제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질문이 빠진 회의실에서 의사결정은 전체 구성원들이 이해하지 못한 채 한 방향으로만 흘러갔고, '비용'은 뒤늦게 청구됐다. 그때 하지 못한 한 질문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왜 그것이어야만 했는지,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그 '청구서'에서 시작됐다.
질문이 어려운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우리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 어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제대로 듣는 것도 잘하지 못한다.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일의 기본기>를 쓴 김지현은 회의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메모를 한다. 그는 세 가지를 함께 적는다. 누군가의 질문, 그 질문에 대한 실제 답변, 그리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답했을지에 대한 가상의 답변. 같은 자리에서 오간 말을 세 겹으로 기록한다. 그는 그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는 답을 적기 전에 질문을 다시 본다. 이 사람은 왜 이 시점에 이 질문을 했을까. 무엇을 알고 싶은 걸까, 아니면 어떤 결정을 앞두고 있는 걸까, 혹은 어떤 우려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걸까. 의도를 짚지 않고 답을 만들면, 답은 길고 정확해도 빗나간다.
"질문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회의에서는 주최자나 의사결정권자의 질문이 있고, 이에 답변하는 식의 회의가 많다. 이때는 질문의 겉모습이 아니라 왜 질문이 나왔는지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기계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라, 질문의 배경과 의도를 고려한 응답이다. 이 과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진지하게 답하는 엉뚱함을 연출한다(이를 두고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86쪽, <일의 기본기> 중에서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는 말은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마케터에게는 곧 성과의 문제다. 질문을 잘못 들으면 리소스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타이밍을 놓쳐 있다. 앞서의 검색 서비스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검색 서비스 론칭에만 신경을 썼지, 이것이 기존의 것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경쟁력이 있는 것인지 질문하지 않았다.
"이거 말고 다른 안은 없어요?"
이 한마디를 들으면, 마케터는 보통 시안을 더 만들어오겠다고 답한다. 하지만 이 질문의 의미가 정말 "선택지가 부족하다"인 경우는 많지 않다.
지금 안에 확신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윗선에 설명할 논리가 부족하다는 뜻일 수도 있으며, 특정 부분 한 군데가 걸리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본인도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확신이 부족하다면 근거 데이터가 필요하고, 설명 논리가 부족하다면 한 장짜리 요약이 효과적이며, 특정 지점이 문제라면 그 부분만 수정한 시안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 구분 없이 시안을 늘리면, 노동량은 늘고 의사결정은 더 늦어진다.
선택지를 늘리면 결정이 쉬워질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필요한 질문은 단순하다.
"어떤 부분이 걸리시는지 조금 더 들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일을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부담을 줄이는 질문이다. 마케터가 혼자 답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상대 머릿속에 있는 망설임을 꺼내는 편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같은 지점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답을 만들기 전에 질문을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실무에서는 쉽지 않다. 되묻는 것은 이해를 못한 것처럼 보일까 부담스럽고, 시간 압박은 즉답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정확하지만 빗나간 답을 만든다. 그리고 일은 다시 돌아온다. 시간과 비용은 추가된다.
내 검색 서비스의 경험도 같은 자리에서 반복된다. "왜 이 엔진인가"를 묻지 못한 회의, 질문이 잘못 놓이면, 그 위에 쌓이는 모든 답은 방향을 잃는다.
김지현의 '메모법'이 말하는 것은 기록 기술이 아니다. 답하기 전에 질문을 다시 듣는 습관이다. 모든 질문을 되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노트 한 켠에 한 줄은 적을 수 있다.
"이 질문은 왜 나왔을까."
이 한 줄이 쌓이면, 질문의 표면이 아니라 그 뒤의 결을 읽는 감각이 생긴다. 모든 것을 바꿀 필요는 없다. 한 가지만 해보면 된다. 다음 회의에서 가장 중요했던 질문 하나를 골라, "내가 답했다면 어떻게 답했을까"를 한 줄로 적어보는 것.
이 연습이 쌓이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답하는 사람에서 질문의 의도를 짚는 사람으로 바뀐다.
사람의 일은 결국 질문에 답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답의 품질은 질문을 얼마나 정확히 들었는가에서 갈린다. 한쪽에서 "된다"는 말이 강하게 들릴 때, "왜 안 될 수도 있는가"를 함께 묻는 것. 그 질문이 기회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