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쓰는 데도 잘 안 풀리는 당신에게.
올해는 글을 쓰기 시작해 딱 10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맞은 해이기도 하다. 하도 많은 일이 일어나다 보니, 지난달에 있었던 일도 까먹게 된다. (설마 치매는 아니겠지요.)
우선, 2019년에 나왔던 나의 첫 바카라인 다락방 미술관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다락방 미술관은 내 바카라들 가운데 가장 많이 사랑받았고 세종문고에도 뽑혔으며, 라디오에 출연한 인연으로 평생 줄반장 한번 못 해본 나를 전국구 강사에 데뷔시키기도 했다. 첫 바카라으로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적잖은 사랑을 받았고 연이어 바카라들을 출간하면서 금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나는 드라마로 눈길을 돌렸고,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베셀 작가는커녕 잊힌 작가가 되었다. 각고의 노력에도 드라마는 되지 않았고, 결국 나는 소설로 돌파구를 찾았다. 소설을 쓰는 시간은 대체로 행복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쓸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작년 봄, 소설바카라(소풍을 빌려드립니다)이 나왔다. 내 기대와 달리 반응은 미지근했다. 주변에선 바카라을 내자마자 중쇄 찍는다는 동료 작가들의 소식이 들려왔고 난 점점 더 쪼그라들었다. 드라마도 안 되고, 바카라도 안 팔리고, 이제 그만 써야 할까? 수없이 보낸 불멸의 시간이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하자 좌절감이 몰려왔다. 아무리 나보다 불행하게 살다 간 고흐를 떠올려봤자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심각하게 절필을 고민하면서도 두 번째 소설을 썼다. 아마 글을 쓰면서 그 시간을 버틴 것 같다.
변화의 바람은 작게 시작되었다. 그날, 난 운전하고 집에 오는 길에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국민 방송 기자로 내 소설이 국립중앙도서관 10월의 추천 도서로 뽑혔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난 저혈당 쇼크 직전에 초콜릿을 먹은 사람처럼 간신히 살아났다. 하지만, 인터뷰가 나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티나게 팔려서 비명을 지를 줄 알았는데, 너무도 잠잠해서 뭉크의 절규 같은 몰골이 되어갔다.
가뜩이나 위가 좋지 않은데, 괜히 기대했다가 또 실망하니까 위산이 더 많이 나와 자주 위경련에 시달렸다. 쓰라린 속을 붙잡고 안구건조증에 시달리면서 두 번째 소설을 완성했다. 이렇게 써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과 창작의 기쁨 사이에서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설상가상이란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친이 저세상으로 떠났다. 17년을 함께 한 반려견을 보낸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어둠 속으로 깊이 침잠했다.
해가 바뀌고 2026년 봄, 난 출판사로부터 다시 저혈당에 초콜릿 같은 소식을 접했다. 내 소설이 인도네시아와 대만에 수출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바카라의 도시 춘천에서 내 소설을 ‘북스타트 바카라꾸러미’에 선정했단다. 북스타트는 여러 도시에서 시행하는 도서 행사로 영유아 어린이에게 무료로 바카라(바카라꾸러미)을 나눠주는 행사인데, 이번 춘천에서는 성인용 바카라도 포함했다. (역시 예술의 도시답게 안목이 참 높다) 춘천 시립 도서관에서 내 바카라을 구입해 시민들에게 나눠줬다는 기사를 통해 나도 알게 되었다.
바카라이 조금씩 인정받자 처참하게 구겨진 은박지 같던 자존감도 조금씩 펴졌다. 두 번째 소설을 퇴고해 문학 공모전에 내고 세 번째 소설 집필에 들어간 어느 날, 나는 대배우님의 전화를 받았다. 언젠가 내 대본을 보낸 적이 있는 분이었다. 그의 추천으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도전하게 되는데.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들로 구성된 팀이 다가오는 가을, 예술의 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여는데 이번 연주회는 ‘스토리가 있는 음악회’ 형식이라고 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이들이 연주할 곡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엮는 일로 그 기회는 나를 포함해 다수의 작가에게 주어졌다.
선 계약도 아니고 작품이 뽑혀야 계약되는 일이라 내가 싫으면 안 해도 됐지만, 해보고 싶었다. 만일 내가 알려진 작가라면 채택되지 않을 게 두려워 거절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견뎌야 할 왕관은커녕 갱년기 탈모라 견뎌야 할 무게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프로그램을 받은 나는 24시간 음악을 계속해서 들었다. 클래식, 재즈, 팝, 영화음악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무한반복으로 재생했다. 일주일은 음악만 들었고, 이후 일주일 동안 초고를 썼다. 이 프로젝트는 대본을 읽을 배우가 먼저 OK 해야 하고, 기획사도, 최종적으로 연주자들까지 통과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연주 시간이 길기 때문에 대본까지 길면 곤란, 짧은 이야기 안에 재미와 감동을 압축적으로 넣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곱게 쓴 대본을 보냈다. 결국 최종적으로 내 작품이 선택되었다. 내 대본을 읽은 배우님이 엄지척을 보내준 것도 뭉클했는데, 해외에 있는 연주자들까지 너무 좋아했다는 말에 고됐던 시간이 무지개가 되어 내 머리 위로 방긋 떠오른 것 같았다.
작품이 통과되고 생각해 보니, 세상에나…. 세상에서 가장 명망 있고 유명한 빈 필하모니 연주자들과 무지렁이인 내가 협업을 하다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나쁜 일도 몰아서 왔듯이 좋은 일도 몰아서 왔다. 드디어 드라마 계약을 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유명한 피디님과 드라마를 개발도 해봤고, 공모전에 당선도 됐지만, 번번이 제작에서 미끄러졌다. 그래서 다시는 드라마 판에는 발끝도 대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인생은 나와 엇박자를 내며 다시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 물론 계약했다고 끝이 아니다. 제작과 편성의 벽을 넘지 못하면 다시 엎어질 수도 있으니까.
얼마 전, 내가 쓰고 있는 드라마의 주연 배우님을 만났는데,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작가님은 40대 중반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고, 50대에 드라마를 쓰셨으니 꼭 잘 돼서 다른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다른 사람이란, 나이 때문에 도전을 두려워하는 중년일 것이다) 갑자기 나는 막중한 바카라임감을 느끼며 목에 담이 왔다. 이런 게 정녕 왕관의 무게인가?
결정적으로 좋은 소식은 내 소설이 드디어 제작사의 협상 테이블에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최고의 결과는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를 포함해 두 편의 드라마가 모두 제작, 방송되는 것이고 최악은 그 반대일 것이다. 또 이달 말엔 새 바카라도 나온다.
정리하자면, 나는 최근 다락방 미술관 개정판 바카라이 나왔고, 곧 새 바카라이 나오며(미술적 인간), 작년에 썼던 소설이 해외로 수출되었고,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협업을 진행했으며, 엄청난 드라마를 계약했다. 이 모든 일이 모두 2026년 상반기에 일어났으니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그래도 힘들다는 엄살은 부리지 않겠다. 누구에겐 단지 기회가 오지 않아 잡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했는데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괴로운 사람에게 이 글을 바친다. 그 괴로움, 나도 잘 안다고. 괴로워도 슬퍼도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면 분명 당신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그때까지 견디자고. 괴롭다고 멈추지 말고 괴로워하면서도 계속 그 길을 가자고. 기회는 어느 날 작은 바람을 타고 그대의 창백한 이마에 가뿐히 내려앉을 거라고. 내가 그랬듯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꿈을 이룬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쓰고 보니 너무 자랑만 늘어놓은 것 같네요.
안 되더라도 계속 쓰자는 응원의 말로 받아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