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거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제일 먼저 드는 생각 하나. ‘오늘은 언제 누구와 어떤 커피를 마실까?’ 하는 계획이다. 카페인에 유달리 민감해서 박카스만 마셔도 두근대는 가슴에 밤잠 못 이루던 내가, 도대체 쓰디쓴 커피를 왜 마시는지 이해 못했던 내가, 이제는 하루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커피’가 은근슬쩍 내 일상을 지배해 버린 게.
난 원래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커피에 독하게 체해본 사람이다. 10살쯤이었나. 엄마가 타 마시던 커피 향에 반했다. 커피를 앞에 둔 아주머니들은 행복해 보였다. 엄마 옆에 바짝 붙어 앉아 한입만 달라고 해봤지만 어른이 되어야 마실 수 있는 거라고 했다. 금단의 유혹은 얼마나 강한가. 결국 엄마 몰래 첫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커피, 설탕, 프림의 황금비율을 알 턱이 없었으니 어른들이 타 마시던 커피 색깔을 떠올리며 이것저것 넣다가 프림을 잔뜩 넣었나 보다. 그 날 단단히 체해서 며칠을 고생했고 그때부터 커피는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다.
그렇게 커피 없이 무미건조한 온라인 게임생활을 했고 커피를 안 마셔서 피부가 좋은 거냐는 립서비스가 진짜인 줄 알고 속으로 으쓱했으며 여럿이 카페에 가면 나 홀로 다른 메뉴를 고르느라 고민했다. 그러다가 아이 친구 엄마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카페에 자주 드나들게 됐다. 나처럼 커피를 못 마시다가 그즈음 커피에 입문한 지인의 권유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입 맛보게 됐다. 첫맛은 역시나 쓰디썼다. “아유, 이렇게 쓴 걸 왜 마셔?”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을 허브차와 에이드로 잘 지냈다. 그런데 이따금 쌉쌀한 끝 맛이 자꾸 떠올랐다. 뭔가 개운한 느낌도 좋았지만 어른이 된 것 같은 맛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더위에 지쳐서 막 나오는데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컵에 살짝 맺힌 물방울, 투명한 얼음과 어우러진 부드러운 갈색의 커다란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뜨거운 몸을 식혀 줄 뭔가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그 날 처음으로 내 몫의 ‘아아’를 주문했다. 그리고 쭉 들이켰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때였던 것 같다. 커피 없이 살 수 없게 된 날은.
이제는 아침에 눈뜬 순간부터 커피 한 모금이 내 목구멍을 넘어가기 직전까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라테를 마실까?
- 달달하게 바닐라 라테도 좋은데. 맞다! 이 집은 아인슈페너도 유명하지?
점심식사 후 이어질 커피타임을 위해 식사는 배부르지 않게 , 적당한 양에서 멈추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식사가 간단할수록 풍성한 거품과 고소한 우유가 가득한 라테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기름지거나 푸짐한 식사 후에는 연하디 연한 아메리카노 한 잔의 입가심이면 족하다.
카페인에 예민한 나에게 허락된 하루 딱 한 잔의 커피. 제한된 즐거움 탓일까? 메뉴 선정까지는 아직도 고민해야 할 것이 남아있다. 바로 뜨거운 커피와 시원한 커피라는 중차대한 결정이다. 나에게 이것은 ‘짜장이냐 짬뽕이냐, 물냉이냐 비냉이냐’라는 한국민의 대중적 고민과는 결을 달리하는 매우 신중해야 할 선택이다. 오늘의 커피는 이번 딱 한 번 뿐이고, 다음번 커피까지는 24시간이라는 물리적 간격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치러지는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거쳐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커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을 다해낸다. 사르르 기분이 풀어지고, 흐릿했던 눈동자에는 신선한 빛이 감돈다.
커피라면 입에 대지도 않던 내가 이렇게 변하게 된 건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 탓이다. 시작일 테지. 얼음 동동 띄운 아메리카노를 몇 모금 홀짝거린 것이 그 시작이라면 시작일 테지. 시원한 보리차 수준의 ‘아아’에 익숙해질 무렵 바닐라 라떼라는 신세계를 경험한 순간, 나는 알아버렸다. 커피를 몰랐던 나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무엇이든 시작은 작고 약하다. 희미한 존재감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 모를 때가 다반사다. 사랑의 시작이 그렇고, 미움의 시작이 그렇고, 이별의 시작도 그렇다. 그렇게 매일 뭔가 시작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커피와의 사랑이 한창 무르익을 1-2년 후에,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을 추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기억의 끝에 글쓰기를 시작한 오늘이 있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고 하루 한 편만 쓸 수 있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말도 안 되는 순간을 꿈꿔본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은 게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