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는 낭비가 따른다
낭만의 본질은 낭비라는 말을 봤다. 연인을 만나기 전에 꽃집에 들러 꽃 한 송이를 사는 일. 전화로 해도 되는데 굳이 밤 늦게 집 앞으로 찾아가 얼굴을 보고 전하는 말. 스트리밍으로 들어도 될 것을 굳이 시간을 들여 LP바에 찾아가 청해 듣는 노래. 모든 일의 시작이 로망의 충족이었던, 지금의 나보다 훨씬 ‘낭만 빼면 시체’ 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浪漫. 浪費.
물결 랑, 흩어질 만. 물결 랑, 쓸 비.
둘 다 물결로 시작한다. 넘실거리는 게 낭만이고 흘려보내는 게 낭비라서, 같은 글자에서 갈라진 두 단어가 서로를 따라다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넘치면 흘러나간다. 그걸 아까워하는 사람은 애초에 넘치지 않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물은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물결이 된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을 쓰는 편이다. 선녀방 시절엔 파티 하나를 열어도 프로그램과 포스터를 만들고, 드레스코드, 음료와 음식의 조합까지 고민하곤 했다. 돈이 들어오는 일도 아닌데 뭐든 본격적으로 했다. 누군가는 저걸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하느냐고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하나같이 ‘그래, 그걸 그렇게까지 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놀겠다는 이유로 그만큼 애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굳이’라는 말에는 ‘고집을 부려 구태여’라는 뜻과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라는 뜻이 함께 있다. 안 해도 되는 일에 마음을 굳힌다는 것이 내게는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대충 하는 쪽이 오히려 더 어려울 때가 많았다.
나는 원래 글을 쓰지 않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몇 년은 거의 쓰지 않았다. 쓰고 싶은 주제가 없기도 했지만, 마음이 차올라 생활까지 범람하는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무언가를 많이 좋아하면 자꾸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다 보면 또 쓰고 싶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그 과정을 통째로 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를 잘 챙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아한다고 해서 내 생활이 흔들리게 두고 싶지 않았고, 잘될 가능성이 낮은 일에는 애초에 마음을 많이 쓰지 않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면 생활은 대체로 잘 유지됐다. 다만 글로 쓰고 싶은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쓰고 싶은 게 생겼다. 어떻게 끝날지 대충 짐작이 가는데도 가는 길이 있고, 하지 않는 쪽이 낫다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되는 일이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영리하고 나를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리하다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할 것이 분명한 길을 택하지 않을 줄 아는 것일 테니까. 대개 과거의 실패나 시행착오는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피할 수 있게 해 준다. 최근 몇 년의 나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도 같다. 그랬기에 마음을 비우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채우지 않았으니까.
그런 내가 무엇 때문인지 올해 여름부터는 피하지 않았다. 어떻게 될지 짐작하면서도 시작했으니 몰랐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내가 한 선택이고, 나중에 힘들어졌다고 해서 그때의 마음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도 없다. 다 알면서 왜 또 그랬냐고 물으면 정확한 대답을 못 하겠지만. 알고 하는 일이라고 나중에 덜 힘든 것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시를 쓰겠다는 것도 꽤 비슷한 고집이다. 한 줄을 붙잡고 몇 시간을 보내다가 다음 날 지워버린다. 시는 쓰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한 장르다. 마음을 마구 쏟아냈다가, 다시 읽으며 넘쳐흐른 단어와 감정과 행간을 지워낸다. 진술과 설명을 줄이는 데 더 오래 걸리고, 다 쓰고 나면 종이에는 빈 곳이 더 많다. 그런데 그 무언가 넘쳐흘렀던 자국이 비워진, 군데군데 빈 문장들에 계속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일까. 내 인생이 장르라면 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 장면에 오래 머물고, 같은 자리를 지웠다 다시 쓰고, 어떤 부분은 그냥 비워두는 것. 효율을 아주 모르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좋아하는 건 대개 그런 쪽이다.
내 사주의 원국은 불이 많은 자리에 덩굴 하나가 있고 그 위로 비가 내리는 모양이라고 한다. 불이 많아서 말하고 쓰고 만드는 걸 멈추지 못하고, 비가 있어서 그 와중에 안 타 죽었다는 설명이다. 가끔은 이런 내가 버겁고,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만 하나 싶기도 하다. 특히 병오년인 올해는 더욱 힘들다. 거대한 불을 햇볕으로 착각해 그쪽으로 자라다가, 불인 걸 알고도 하릴없이 계속 자라는 덩굴 같다.
그럼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영원히 낭만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낭만이 낭비라는 말보다는 낭만에는 낭비가 따른다는 쪽이 좋다.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다 보면 나중에 아까워지는 몫도 생기지만, 좋아했던 시간까지 전부 낭비였다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물론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나 싶은 일들은 있다. 아까운 시간도 있고, 안 했으면 좋았을 말도 있다. 다만 그런 것들을 하나씩 빼고 나면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도 꽤 많이 빠져나가서 남길 것이 없다. 지난 몇 년이 그랬다.
낭만의 정의라고 해도 좋을 시구가 하나 있다.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
아마 다음에도 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꽃집에 들를 것이다. 구태여, 곧 시들 것을 알고 있는 꽃을 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