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작품인가, 관람자인가.
그림 앞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조금 전까지 화면은 색과 선, 물질과 공간의 배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오래 바라보는 순간, 화면 깊숙한 곳에서 어떤 기억이 떠오른다. 잊고 있던 얼굴,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가 이상하리만큼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작품인가, 관람자인가.
아니면 작품과 관람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어떤 파동이 일어난 것일까.
칼 구스타프 융이 오늘날의 양자파동예술을 보았다면 아마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인간의 정신, 즉 프시케(psyche, 정신)를 의식이라는 좁은 방 안에 가두지 않았다. 개인의 기억 아래에는 더 깊은 무의식이 있고, 그 아래에는 인류가 오랜 시간 공유해 온 원형과 상징의 바다인 집단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한편 20세기 물리학은 단단하고 확정적으로 보이던 물질의 세계에서 파동과 확률, 중첩과 얽힘이라는 낯선 질서를 발견했다.
심리학자 융과 양자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서로 다른 학문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신과 물질이 완전히 분리된 두 세계인지 함께 질문했다.
오늘날 그 미완의 대화가 예술 안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
https://youtu.be/muUNWeIQqfY?si=ar7jLAGI1Nd78e08
김남효 박사, 양자파동아트 작품설명 유튜브 영상 >>
흑백의 대비를 통해 표현된 나무들은 꿈과 현실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상징하며,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양자 역학 원리로 해석됩니다.
1. 파동적 중첩과 비결정성 (0:29-1:20): 나무들이 현실과 꿈의 이미지로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은 입자가 파동 함수로 공존하는 상태를 은유합니다.
2. 양자 얽힘과 상호 연결성 (1:21-2:06): 연작 속 나무들의 유기적인 변화는 우주 만물이 미시적 수준에서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음을 보여줍니다.
3. 양자 터널링과 존재의 이동 (2:07-2:57):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은 에너지 장벽을 확률적으로 통과하는 양자 터널링 현상에 비유됩니다.
4. 에너지 파동과 형태의 유동성 (2:58-3:38): 수묵을 활용한 표현은 고정된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진동하는 에너지 파동으로서의 물질적 속성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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