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사조를 융합한 도시비엔날레 제안
현대미술 사조를 융합한 야간 경관조명 및 미디어아트 기반의 도시비엔날레 제안 연구보고서
김남효교수 동서양디자인연구소
서론: 야간 공공디자인의 현대적 지향점과 빛의 패러다임
현대 도시 공공디자인에서 야간 경관은 어둠을 밝히는 기능적 치안의 도구를 넘어, 도시의 정체성과 활력을 표출하고 문화적 가치를 생산하는 중추적인 예술적 매개체로 인정받고 있다. 과거의 무분별하고 양적인 조명 계획에서 탈피하여 질적인 전환을 이루려는 시도는 전 세계적인 조명 트렌드로 자리 잡았으며, 국내외 여러 도시에서도 좋은 빛 환경을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핵심에는 빛공해 및 빛간섭을 최소화하는 기술적 고도화와 더불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여 도시의 감성을 고양하는 질적 향상의 요구가 자리한다.
서울특별시가 제시한 야간경관 5대 기본원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조명(Public), 높은 에너지 효율의 친환경 조명도시(Ecology), 양적 조명에서 질적 조명으로의 전환(Quality), 그리고 첨단 신기술을 적용한 안전하고 지능적인 조명환경(Safety & Intelligence)의 구축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밤의 공간이 시민 공동체 전체가 누리는 심미적 영토이자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일부여야 함을 가리킨다. 그러나 현재 수많은 상업적 공간에 설치된 휘황찬란한 미디어파사드나 무분별한 옥외 조명은 시각적인 자극과 피로감을 가중시켜 공해로 치부되는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따라서 본 제안 연구는 현란한 빛의 쇼를 펼치는 상업적 연출에서 벗어나, 현대미술의 깊이 있는 예술적 사조를 적용하여 야간 경관조명과 미디어아트를 재구조화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도시 고유의 문화재와 자연 자산, 상권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정례적인 '도시비엔날레' 형식으로 기획함으로써, 도심의 주야간 활력을 증진하고 예술적 품격을 세계적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전략적 마스터플랜을 도출하고자 한다.
미학적·철학적 프레임워크: 아우라의 소멸과 디지털 재구축
미디어아트와 디지털 조명을 활용한 야간 비엔날레의 학술적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미학적 아우라(Aura) 이론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벤야민은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기계 복제 기술의 등장이 원본 예술작품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물리적 현존성, 역사적 흔적, 그리고 일회적인 존재감인 아우라를 해체시킨다고 보았다. 기계 복제는 고고한 종교적 제의 가치(Cult Value)를 하락시키는 대신, 대중이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전시 가치(Exhibition Value)를 증폭시켜 예술의 대중화와 민주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벤야민은 다다이즘과 같은 아방가르드 운동이 예술의 형식주의와 신비주의를 파괴하고 아우라를 말소하기 위해 행했던 투쟁과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파괴적 실험을 목격한 선구자적 미학자였다.
현대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에 기반한 디지털 복제 시대는 원본의 물질적 흔적조차 소멸시킨 알고리즘 변이 형태로 나아가며 벤야민의 아우라 상실 명제를 극단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스펙터클의 범람 속에서 현대 공공미술은 도리어 역설적인 장소적 아우라의 재구축을 강력하게 열망한다. 디지털 아트가 웹 상의 모니터나 사적인 디바이스를 벗어나 도시의 물리적인 건축물, 자연환경, 그리고 역사적 맥락과 결합할 때, 예술은 관객과 작품이 오직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교감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현존성과 숭고한 거리감을 획득하게 된다. 이는 미술관이라는 정형화된 공간적 울타리를 탈출하여 일상의 공공 공간을 변화시키려는 포스트모던 미술의 흐름과 완벽히 궤를 같이한다. 수 세기 전 조성된 중국 둔황 막고굴의 유적을 디지털 기술로 시각 복원한 프로젝트가 원형의 훼손을 방지하면서도 시공을 초월한 숭고한 가치를 대중에게 재구축하여 준 사례는 이러한 디지털 아우라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나아가 수전 힐러(Susan Hiller)가 뒤샹의 회화 속 후광(Halo) 개념을 추적해 인터넷의 디지털 기술로 아우라를 다차원적으로 재구성한 예술적 실험처럼, 공공 야간 예술 역시 첨단 디지털 기술을 경유하여 장소의 정체성을 재창조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적 공공디자인의 실천은 대중에게 지대한 정신적 혜택을 선사한다. 거주민들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도심의 시공간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영구 거주 의지를 제고하고, 타인과의 상호작용 기회를 증대시켜 슬롯적 소외와 고립감을 완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과거 서울 인사동의 공동간판 개선 프로젝트가 단순한 환경 정비를 넘어 골목길의 역사성과 슬롯적 통합을 도출하며 지역 갈등을 치유했던 대안 미술의 사례처럼, 예술을 머금은 야간 비엔날레는 도시의 파편화된 갈등을 승화하는 슬롯적 통합의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된다.
현대미술 사조의 공공디자인 이식 가이드라인
빛의 순수한 미학적 특성과 물리적 공간을 탐구했던 현대미술의 두 거장, 댄 플래빈과 제임스 터렐의 사조를 분석하여 도시 경관 조명 디자인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정립한다.
댄 플래빈의 미니멀리즘과 형광등 설치 기법의 도심 이식
댄 플래빈은 뉴욕 퀸스의 가톨릭 가문에서 자라 사제가 되기 위해 수학하였으며, 주한미군으로서 오산 공군기지에서 복무하던 시기부터 진지하게 예술을 탐구하기 시작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1961년 전구가 부착된 액자 형태의 초기작 '아이콘(Icons)'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이는 비잔틴 정교회 화가들의 신성하고 값비싼 전통 이콘화의 위엄을 아주 저렴하고 복제 가능한 공업용 형광등으로 해체하는 동시에, 버려지고 황량한 일상의 실내 공간을 성찰의 기념비적 장소로 변모시키는 이중적인 반어법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노란색 형광등을 단 하나의 사선으로 배치하여 거장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에게 경의를 표한 기념비적 설치작품이나, 친구들의 이름을 빌려 똑같은 규격의 사각형 형광등 프레임을 반복 배열한 '유럽인 커플(European Couples)' 시리즈를 통해 재료의 유한한 성질(수명이 다하면 꺼지는 전구)로 영원불멸하는 고결한 예술의 질서에 도전하였다.
이러한 플래빈의 선형 환원주의와 빛의 구조주의를 도심의 야간 공간에 투영하기 위해서는, 외관에 유리 디스크를 투과하는 다채로운 LED 전구들로 장식된 갤러리아백화점과 같은 대중 지향적이고 눈부신 상업적 연출 스타일을 세심하게 통제하여 보완해야 한다.
구조적 선형 광원의 지배성: 건물의 평면적인 전면을 자극적인 동영상 화면으로 가득 채우는 과도한 투사 방식을 지양하고, 교량 하부의 교각, 골목의 옹벽 모서리, 고딕 양식의 근대 건축물 필라스터 등에 단색 혹은 절제된 색온도를 지닌 선형의 LED 기구를 내장 일체화하여 설치한다.
정적 보색 대비와 점진적 페이딩 효과: 노랑, 빨강, 파랑 등 플래빈이 주로 구사했던 세련된 원색 계열을 연출하되, 이를 현란하게 점멸하거나 휘청거리는 동영상으로 가동하지 않고 건축 본연의 재질과 그림자가 상호작용하도록 배치한다. 색이 변환될 때는 눈에 인지되기 힘들 정도로 느린 시간에 걸쳐 페이드인 및 페이드아웃되도록 디밍을 정밀 큐레이션한다.
제임스 터렐의 빛과 공간 운동의 환경 설계 이식
제임스 터렐은 빛을 어떤 물체를 비추기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빛 그 자체를 하나의 뚜렷한 촉각적이고 물질적인 물리적 대상으로 격상시킨 예술가이다. 그는 프레임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의 무한한 공간감을 재발명하거나, 빛이 가득 찬 백색의 방 안에서 관객이 물리적 깊이감을 상실하고 숭고한 침묵에 빠져들게 만드는 내면적이고 명상적인 공간의 신전을 구축해 왔다.
터렐의 철학을 도시 공공디자인에 도입하기 위한 공간 설계 지침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형 도시 공공 쉘터 조성: 도심지 광장이나 주요 수변 공원에 천장이 타원형이나 직사각형으로 뚫린 전용 구조물을 배치하고, 개구부 주변 보이지 않는 안쪽 벽면에 디밍 조명을 매립한다. 인공 조명의 미세한 파장 변화는 인간의 시각 수용체에 인지 왜곡을 야기하여, 뚫린 하늘 구멍이 실제 시간대의 색채와 완전히 다르게 푸르거나 혹은 깊은 보랏빛으로 보이게 만드는 지각의 기적을 공공 공간에서 시민들에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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