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쌤의 spots of time

25. 중산간의 건초 수확

by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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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바람이 매우 깊다. 딱 이맘때 쯤의 걷기는 매우 상쾌하고 즐거운 산바카라이 된다. 그것도 억새풀이 흔들거리는 제주의 중산간 둘레길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중산간", 어릴 때 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다. 바로 어릴적 내가 살았던 곳이 중산간이었기 때문이다. 중산간의 풍경과 그곳에서의 삶의 기억들은 내 몸에 알알이 박혀서 비슷한 공기와 비슷한 내음만 느껴도 박혀 있던 것들이 연기로 변하여 스멀스멀 나오려고 한다. 내가 살았던 중산간엔 눈이 많이 내렸고, 바람도 많은 곳이었다. 경사진 언덕, 구릉진 곳, 비탈진 귤과수원이 여기저기 불규칙적으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중산간이어서 버스 배차간격도 거의 한시간이었고 그래서 이동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비나 눈이 많이 오면 학교 등교 시간이 늦춰지거나 등교 안해도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들판에서, 언덕에서 하루종일 뒹굴 수 있기도 했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고향 마을의 중산간을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그녀가 소설속에서 말하는 눈이 많이 내리는 동네는 분명 우리 동네를 말하고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내 기억 속의 제주 중산간은 눈이 많이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마을은 중산간이어서 4.3의 비극을 정면으로 맞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름주변의 억새풀이 그리도 무성했을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제주 중산간은 바람이 많은 곳이다. 오름에 올라 세찬 바람을 맞고 있으면 바람에 내 몸이 닳는 것은 아닐까 상상도 하게 된다. 그 세찬 바람에 억세풀들이 자라고, 여린 풀들도 씩씩하게 자라고, 작은 풀들은 단단하게 속을 채운다. 소를 키우셨던 부모님은 가을이 되면 매일매일 오름에 가서 풀을 베셨다. 풀들에게 먹일 건초수확을 위해서이다. 건초수확은 2주 내지 3주간 이어지는 고된 작업이다. 아버지께서 다른 일꾼들과 큰 낫으로 풀을 베시고, 그 옆에서 어머니는 그 전 주에 베어서 바싹 말린 풀을 단으로 묶는 작업을 하셨다. 바람과 햇빛에 풀이 말라가는 내음이 우리 집 마당까지 퍼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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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피사로의 <건초 수확> 그림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부모님의 건초 수확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저 멀리 이국적인 땅에서 그려진 그림이지만 제주 중산간을 닮은 풍경이니 그 어찌 좋아하지 않을까. 농부들의 작업 소리와 바람소리가 이어지고, 아, 이따금씩 아버지가 내뱉는 휘이~ 거친 숨소리와 어머니의 후~ 노동의 숨소리가 들렸었다. 그 이외에는 공기의 소리만 들린다. <건초 수확> 그림 속에서도 이 버터색의 공기에서 이들이 열중하는 작업의 신성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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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전공, 제인 오스틴을 좋아합니다. 에세이를 쓰고, 시를 쓰고, 학습 자료를 만들고 북리포트를 쓰는 창작자입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중학교 영어 교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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