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맺어진 인연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페이스북이 10년 전 사진을 소환했다.
고대 담벼락에 딱 붙은 건물 2층.
망해버린 카페 주인이 창문 위에 남겨놓은 정체불명의 얼룩들.
그 공간을 임차해 학생들 아지트로 만들었다.
당시 나는 고려대에서 창업수업을 맡고 있었다.
"커뮤니티가 곧 학교다"는 생각으로 교실 밖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마침 학교 담벼락 바로 옆 건물 2층에 텅 빈 카페가 있었다.
망해버린 카페의 창문 얼룩은 청소 전문가도 손사래를 쳤다.
그런 얼룩을 학생들이 며칠 만에 면도칼로 긁어내고 말끔히 치워버렸다.
그 공간에서 뭐가 될지 모르니 뭐든 다 해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아지트를 가장 열심히 드나들던 학생 중 하나가 김종민이었다.
점유율만큼 청소도 열심이었던 기억이 난다.
졸업 후 그는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온라인 게임을 다니면서도 화이트해커 동아리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삼성을 떠나 해커스랩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다.
"게임만 하던 제가 화이트해커가 될 수 있었던 건, 실력 좋은 친구 덕분이었어요.
그 경험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10년 전 내가 만들었던 아지트의 철학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종민, 그리고 그의 개발자 친구들과 함께하는 AI 스터디.
그들의 니즈는 하나다.
"비개발자들이 AI를 어떻게 쓰는지 보고 싶다."
우리 쪽 니즈도 하나다.
"찐 개발자들 옆에서 AI를 제대로 써보고 싶다."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지는 자리.
가르치고 배우는 경계 없이, 그냥 같이 탐험하는 시간.
누가 선생이고 누가 학생인지 모르는 이 모임이 요즘 내가 가장 기다리는 약속 중 하나가 됐다.
창업이라는 험난한 선택을 한 지 15년이 흘렀다.
교육 스타트업을 운영한다는 건 성과를 숫자로 증명하기가 유독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흔들렸다.
"이게 맞는 길인가."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시간이 만들어낸 가장 단단한 결과물은 사람이었다.
훌륭하게 자란 사람들이 인생의 동반자이자 지지자가 되어 지금 내 옆에 있다.
10년 전 내가 만들어준 아지트에서 자란 사람이 지금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함께 배우고, 함께 시도한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