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하며 나누며
* 이 카지노 게임은 "따스한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무능력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약한 처지와 무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가치를 거꾸로 우월한 가치로 포장하고 위장함으로써 살아남고자 하는 계략을 '무능의 간계'라고 말합니다.
- 니체의 인생 강의, 이진우
무능력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약한 처지와 무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가치를 거꾸로 우월한 가치로 포장하고 위장함으로써 살아남고자 하는 계략을 '무능의 간계'라고 한다.
무능의 간계는 위 문장처럼 무능한 사람이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교묘한 술수이다. 무능의 간계엔 무능을 숨기기 위해 작동하는 행동 방식이 있다. 이를테면 패턴 같은 것.
그것은
- 바카라임을 지지 않기 위해 결정을 미루고
- 시간을 끌면서 상황이 저절로 정리되기를 기다린다.
- 무능한 사람의 언어는 모호해서 처음부터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일의 결과를 보고 원래 안 될 줄 알았다거나 자기 공이 있었다고 나선다.
- 다른 사람이나 규정 등을 핑계로 바카라임을 전가하고
- 자신의 무능이 드러날까 봐 유능한 사람의 성과를 무시하거나 견제하고 모함한다.
- 행동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것처럼 꾸민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무능한 사람도 일부러 악의를 품고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생각난다면 과한 걸까.
언젠가 사설 수영장으로 과외를 받으러 다닌 적이 있었다. 강습이 끝난 후 나와보니 흰색 자동차가 출구를 막고 있었는데 연락처도 없이 그렇게 주차를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함께 나온 회원들과 나는 꼼짝없이 주차장에 갇히고 말았다. 출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참 난감했다. 연락할 방법을 찾기 위해 차 안을 살펴보니 바로 옆에 있는 성당의 주보가 보였다. 성당으로 찾아가 여차저차 사정을 얘기하니 성당 측에서는 그 사람이 미사에 참석 중일 거라고 했고 미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미사는 막 시작을 한 터라 우리는 무력하게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경건한 기도와 성가 소리를 들으며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참으며 기다리는 30분은 3시간 보다 더 길었다.
차를 빼는 과정에서 수영 회원 중의 한 사람이 화를 내자 그 사람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미사에 늦어서 그랬다며 오히려 화를 내더니 급기야는 몹시 흥분하면서 고함을 쳤다. 여긴 우리 성당 땅이다, 니네가 남의 땅에 주차한 거다, 하면서. 평일엔 지역 주민과 공유하는 주차장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을까? 분명한 것은 그 사람이 우릴 못 나가게 하려는 악의가 처음부터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본인 편한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것일 뿐.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으면 됐을 것을, 급해서 그랬다는 적반하장과 소유를 주장하는 억지 논리는 다른 사람이나 규정 등을 핑계로 바카라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자주 경험하는 무능의 간계가 아닐까.
나는 그날 몹시 화가 났고 같은 천주교 신자로서 몹시 부끄러웠다. 우리는 누구나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무능과 무지, 어리석음과 이기심을 감추기 위해 서슴없이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무능을 숨기기 위한 행동 패턴의 배경엔 두려움이 있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바카라임에 대한 두려움, 체면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두려움, 자신의 한계를 모르거나 또는 알아도 인정하지 못하는 뒤틀린 자존심이다. 대표적인 무능의 간계는 공직슬롯의 복지부동이다. 아무 결정도 하지 않으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태도. 그러니 바카라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가 최근에 겪은 세월호, 이태원 사고, 두 번의 대통령 탄핵 등에서 우리는 이미 적나라하게 무능의 간계를 보았다. 솔직함과 담백함,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본질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안목,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겸손함, 자신의 언행에 대한 바카라임감 등이 사실은 진짜 능력이다.
무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나는 질문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다. 모르는 것은 묻고 찾아보고 익혀야 하는 필요가 있는 기술도 배우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배우는 것은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나는 안다. 무지해서 저지른 실수나 잘못 앞에서 변명하지 않고 고개 숙여 사과하겠다. 사과한다면서 은근슬쩍 남의 탓은 하지 않겠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들이 내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고 무엇보다 남이 읽지 않아도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무능력을 보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특별한 나의 스승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스승은 도처에 있고 그들이 스승으로 내게 다가왔을 때 편견이나 무지로 눈 감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편견을 걷어내고 잘 배우는 것, 이것이 내가 나의 끝없는 무능력을 보완하는 방법이다.